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끝에 위치한 도시, 바스토우(Barstow) 외곽에 자동차 극장이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한 번 구경하기도 어려운 자동차 극장에서 트럭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은 무척 특별할 것 같았다. 즉시 버킷리스트 감이다.
마침 내일 LA 인근 도시에서 농산물을 실을 예정이라 일정이 딱 맞았다. 낮에 바스토우에서 트레일러 내부 세차, 식사와 샤워 등 볼 일을 다 보고 쉬다가 오후 6시에 9마일 떨어진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인 극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오후 7시부터 문을 연다고 적혀 있다. 45분을 기다리려 했는데 관리인인지 주인인지 모를 남자가 나와 입장료를 받고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입장료는 성인 일인당 12달러. 애들은 5달러고 4세 이하는 무료다. 현금만 받는다.
비포장 넓은 공터에 커다란 스크린이 90도 각도로 2개 설치되어 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저녁 각 스크린 당 두 편씩 총 네 편을 상영한다. 한 스크린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다른 스크린은 R등급 영화를 상영했다. 과거 우리 동네 극장에서 동시상영이라고 하면 두 편을 번갈아가며 상영했다. 여기는 진정한 동시 상영이다.
나는 덩치가 큰 트럭이다 보니 다른 차량에 방해되지 않게 뒷쪽에 주차했다. 고개만 돌리면 두 영화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오디오는 FM 라디오 채널로 나왔다. 다음에 오면 좀 더 앞에 주차해봐야지.
C는 영화가 재미 없었는지, 이런 종류의 낭만을 즐기지 않는지 첫 영화를 보다 중간에 자기 침대로 올라갔다. 첫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드라큐라로 출연한 영화 Renfield였는데 공포, 코메디, 잔혹 액션을 뒤섞어 놓은 B급 영화였다. 짝달막한 체구의 아시안 여성이 여자 주인공을 맡았는데,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연기를 잘 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주연을 맡았는지 모르겠다. 인종 안배가 요즘 대세라서 그런가. 두 번째 영화도 장르가 불분명한 B급 영화 Cocaine Bear였다. 원래는 온순한 흑곰이 코카인을 먹고 맛이 가서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다니는 영화다. 그렇다고 이 곰이 나중에 죽느냐? 곰 입장에서는 해피 엔딩 영화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
영화의 재미와는 별개로 별 빛 아래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 자체가 특별했다. 밤새 트럭 주차도 할 수 있어 주차료 낸 셈치면 된다. 두 스크린을 통틀어 승용차는 10대 정도가 관람했다. 주말에는 좀 더 오려나? 드라이브 인 극장 자체가 옛 시대의 문화다. 과거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드라이브 인 극장 장면을 볼 때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매점에서는 각종 스넥을 파는데 팝콘은 한 번 리필도 가능했다. 직원들은 친절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할 것이라 하니 편한 시간까지 있다가 출구로 나가라 했다.
영화가 끝나고 승용차가 모두 빠져나가자 조용했다. 주변 소음 없이 조용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영화도 보고 주차도 하니 일석이조다. 오며가며 틈날 때 종종 들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