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손

교실 이야기-성욱이(2)

by 허우영

전교생이 80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 학교. 이곳에서 5학년 담임을 하며 만난 11명의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교직 생애 처음으로 1년을 온전히 담임으로 함께한 학생들이었고, 내 결혼식에 직접 축가를 불러준 고마운 제자들이다.

'내년에는 6학년 담임을 할까? 이 아이들과 1년 더 함께 하면 어떨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주변 선생님들께 여쭤봤더니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2년을 데리고 있다가 졸업시키면 정이 진짜 많이 들긴 하겠네요."

"선생님하고 잘 안 맞는 학생 있으면 서로 괴로운 거 아니에요?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나 싶은데..."

여러 고민 끝에 6학년 담임을 지원했다. 앞으로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자고 말하며 5학년을 마무리했는데... 6학년 담임으로 나를 다시 만나면 뭐라고 할까?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을 하며 3월 첫날 교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올해 6학년 담임을 맡은 허우영입니다."

"악! 쌤 뭐예요~?"

"우와 이럴 수가! 쌤 이거 몰카죠?"

"저는 사실 조금 예상하고 있었어요 헤헤."

반응들을 살펴보니 나쁘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해에 이어 다시 만난 성욱이. 성욱이도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짜식. 웃기는.


성욱이는 여전히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 못했다. 한 문제를 이해하는 시간이 다른 친구들보다 더 오래 걸렸다. 그래서 과제를 끝내는 속도도 느렸다. 방과 후에 교실에 따로 남겨서 가르치면 잘하는 것 같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제자리였다. 대신 성욱이 책상 위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온갖 희한한 물건들이 늘 올려져 있었다. 정체불명의 철사나 작은 못, 다 쓴 샤프심 통, 고무줄, 병뚜껑 등등... 그리고 그것들로 자기 만의 장난감을 만들어 갖고 놀았다. 수업 시간에 못 만지게 하면 잠깐 참았다가 다시 만지작 거리고,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애들이 뛰어놀 때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창작물에 집중했다.

"성욱아 오늘은 또 뭘 만든 거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재료들은 어디서 난 거야?"

"복도에 떨어져 있던 지우개에다 제 샤프 뚜껑을 끼운 거예요. 이 고무줄을 여기 걸고 요 플라스틱 조각을 당겼다 놓으면 총알처럼 날아가요. 그리고 이렇게 뒤집어서 손가락으로 돌리면 윙윙 소리도 나고요."

지금까지 내가 성욱이에게 했던 모든 질문의 대답 중에서 가장 긴 답변이었다. 마치 매장에서 판매 중인 제품을 설명해 주는 직원 같았다.

"그래. 재밌어 보이네. 근데 수업시간에는 갖고 놀지 말자."


그러다 어느 날 공문 하나를 발견했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과학탐구대회 참석 안내 공문이었다. 내가 일하는 지역이 특별자치시로 출범한 후로 처음 열리는 대회였다. 세부 종목을 살펴보는데 '진동자동차' 대회가 있었다. 주어진 코스를 가장 빠르게 통과하는 자동차를 만든 학생이 입상하는 대회였다. 자동차 부품은 주최 측에서 제공하고, 학생은 그것을 만드는데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내된 코스를 가장 빠르게 통과할 수 있도록 생각하면서 만드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 안내문을 보는 순간 바로 성욱이가 생각났다.

"성욱아, 선생님이랑 대회 한번 나가보자."

"무슨 대회요?"

"전동 자동차 대회야. 네가 직접 조립해야 하고."

"저는 지금까지 그런 거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어요."

"알아. 내가 도와줄게. 이건 딱 너를 위한 대회거든."

그날부터 우리는 모의 자동차를 미리 만들어보고, 건전지를 넣어서 실제로 움직여보는 연습을 했다. 특히 대회 코스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학교 뒷마당 수도꼭지에 달려있던 긴 호스로 경기장 모양을 만들었다. 성욱이는 모의 주행을 해보면서 스스로 알아갔다. 왼쪽으로 커브를 잘하려면 자동차 날개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도가 너무 빨라서 뒤집어지지 않으려면 바퀴 간격이 어느 정도가 좋은지 말이다.

"성욱아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왜 두 번째에는 더 빨라졌어?"

"그... 아까 이쪽으로 넘어졌으니까 여기 바퀴를 살짝 돌렸어요."

"바깥쪽으로? 바퀴를?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 그냥 한 건데요."


당일 토요일 아침. 성욱이를 차에 태워서 대회 장소인 한 초등학교 강당으로 갔다. 우리 지역에서 꽤 많은 학교가 참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았다. 괜히 나까지 살짝 긴장이 되었다.

"성욱아 그냥 연습했던 대로만 해. 긴장하면 실력이 안 나오니까. 알았지?"

"네."

지도교사는 경기장 안쪽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직 학생들만 입장해서 직접 자동차를 제작한다. 그리고 그 자동차로 주행을 한다. 딱 두 번. 일단 각자 자신이 만든 자동차 전원을 켜서 첫 번째 주행을 하고 기록을 잰다. 그다음 보완할 부분을 스스로 찾아서 고친 다음 두 번째 주행을 하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주행 기록 중 가장 좋은 기록이 그 학생의 기록으로 등재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사는 전혀 개입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학생이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도록 출입까지 통제했다. 약간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석에서 기다렸다.


"성욱아, 어땠어? 잘 된 것 같아?"

"모르겠어요."

"기록은? 몇 초 나왔어?

"기억 안 나요."

"뭐? 1차 주행이랑 2차 주행이랑 기록 비교 안 했어?"

"네."

그래도 나름 한 달 가까이 준비한 대회를 마친 학생인데 답변이 기가 막힌다.

"아니 성욱아. 뭐라도 자세히 좀 말해봐. 1차, 2차 주행할 때 자동차가 잘 움직이기는 했어?"

"첫 번째 했을 때... 자동차가 돌다가... 한번 느리게 갔어요. 그래서... 그거 고치고 두 번째 했을 때는 안 멈추고 끝까지 잘 갔어요."

"그래? 흠... 그런데 기록은 못 봤단 말이지? 알겠어. 다른 애들이 만든 자동차는 빨랐어?"

"모르겠어요. 안 봐서."

뭐지 이 초연함은? 정말로 자동차 만들기에만 집중하신 현자 앞에서 나만 괜히 흥분하고 있네.

"알겠어. 아무튼 성욱아! 수고 많았어.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래도 성욱이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니까.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고 나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몇 주 뒤. 대회 결과가 공문으로 안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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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이는 이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참가한 학생들 중에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긴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직접 교실까지 찾아와 축하 인사를 하셨고, 학교 정문 앞에는 성욱이의 이름이 크게 보이는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그리고 성욱이는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교장선생님이 전해 주시는 교육감상을 받았다. 공부가 느리고 말주변이 없어서 눈에 띄지 않는 학생. 성욱이도 딱 그런 케이스였다. 학교에서도 상 한번 받은 적 없고, 수업시간에 발표도 제대로 못했던 아이가 교육감상을 받게 되었으니 성욱이 어머니는 또 얼마나 감격했을까. 그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좀 뭉클해졌다. 1년 전에 학교 앞 가게에서 새콤달콤을 훔쳤던 성욱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성욱이는 지켰다. 이제 우리 사이에 가장 오래 남을 기억은 그때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욱이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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