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성욱이(1)
옆 반 선생님이 급하게 교실로 찾아오셔서 나를 부른다.
"선생님! 잠시만요!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왜요? 무슨 일 있나요?"
"우리 애들이 학교 앞 슈퍼(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것 같아요."
다행히 선생님이 용의자(?)들을 자기 교실로 다 불러 놓은 상황이었다.
"한 명은 선생님반 성욱이에요."
"아...."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5학년인 우리 반 성욱이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4학년 민석이와 함께 놀고 있었다. 방과 후에 허기도 몰려오고 심심한데 할 것도 없는(사고 치기 딱 좋은) 상황에서 아이들이 간 곳은 시골 학교 앞에 있는 슈퍼였다. 연세 많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슈퍼에 들어가서 민석이는 사장님 시선을 살피고 그 사이 성욱이가 새콤달콤을 하나 주머니에 넣어서 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기들 딴에 뭐 대단한 걸 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나 보다. 운동장에서 서로 나눠먹다가 지나가던 4학년 남자애를 붙잡고 무용담을 들려주며 새콤달콤을 나눠줬는데 바로 그 애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제가 아이들 붙잡고 얘기를 들어보니 성욱이가 좀 주도를 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형이니까. 민석이는 형이 하자고 해서 했다고 하고. 성욱이도 그건 인정을 했고요. 우리가 애들 담임이니까 각자 교실에서 한 명씩 따로 얘기를 하는 게 좋겠어요."
나보다 경력이 10년 많으신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생각보다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리드를 해주셨다. 성욱이를 우리 반으로 보내고 나도 나가려는 찰나에 한 말씀 더 하셨다.
"아이 상담 끝나면 부모님께도 전화하시고요. 이런 일은 꼭 아셔야 하니까."
우리 반 교실로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아이에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애정을 갖고 대하는 우리 학급 아이가 이런 사고를 쳤다는 생각에 괘씸하기도 했다. 설렁설렁하게 넘어갔다간 나중에 더 큰 잘못을 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혼을 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성욱이는 떨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성욱아! 선생님이 듣기로는 네가 이번 일을 주도했다고 하는데 맞니?"
"네."
"선생님이 이 일을 알게 되고 지금 많이 당황스럽고 화가 나. 하지만 그전에 네 얘기를 들어야겠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얘기해 봐."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어렵게 한 마디를 꺼낸다.
"그냥... 갑자기...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네가 모르면 내가 어떻게 아니. 요만한 녀석들은 사고 치는 것보다 상담할 때 더 울화통이 터진다. 지가 일을 저질러 놓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사실 나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적이 있다. 어릴 적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집사님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의 형이 쓰는 방에 혼자 들어간 적이 있다. 형은 학교에 가서 없었는데 진열장에 놓여있는 배트맨 피겨 인형이 너무 멋져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를 몰래 내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말았다. 몇 살인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때 나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미취학 아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린애들은 모두 순수하다고? 유치원 다니는 꼬마 아이도 도둑질할 수 있다. 내가 직접 해봤으니까 검증이 된 셈이다. 불행하게도 그때의 경험은 어른이 될 때까지 마음 한편에 늘 죄의식을 갖게 하는 기억이 되었다.
성욱이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배고프기도 하고. 호기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새콤달콤을 바지 주머니에 몰래 넣고 나오는 상황이 재밌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약간의 재미를 맛본 후 지금은 교실에서 잔뜻 긴장한 채 떨고 있다.
"성욱아. 네가 훔친 물건이 새콤달콤이냐 100만 원이냐는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야. 문제는 그 행동이 잘못이라는 거야. 그동안 너랑 한 학기를 보내며 서로 정도 많이 들고, 선생님이 성욱이에게 기대하는 것들도 있는데 이런 행동을 하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때부터 성욱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가 워낙 통통하고 열이 많아서 안 그래도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는데 눈물 콧물까지 흘리니 얼굴 전체가 수도꼭지가 된 것 마냥 물이 뚝뚝 떨어졌다. 휴지를 뽑아 코부터 풀어줬다.
"성욱아. 울지만 말고 말을 해봐. 어떡하면 좋겠니?"
"죄송해요.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이미 잘못한 일에도 책임을 져야 해. 부모님도 아셔야 하고."
눈이 동그랗게 커진 성욱이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아까보다 더 공포에 잠긴 표정이다. 그러게 새콤달콤 집을 때도 이런 상황을 좀 생각하지 그랬니.
"왜...? 집에는 얘기 안 했으면 좋겠어?"
"네, 제발요."
하, 정말 어찌해야 할까. 아이를 앞에 두고 한 동안 침묵 속에 고민했다. 성욱이 가정 상황을 몰랐다면 바로 전화해서 알렸을 텐데.
성욱이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고 계신다. 삼 남매를 거의 홀로 키우느라 밤늦은 시간까지 고되게 일하고 오면 성욱이가 엄마 어깨를 주물러 준다고 한다. 형은 고등학생이라 집에 거의 없고, 엄마가 오기 전에 여동생 저녁 상을 차리는 것도 성욱이 몫이다. 그런 성욱이를 성욱이 아빠는 왜 그렇게 못살게 구는지 매일 술에 취해 늦게 와서 성욱이에게 소리 지르고 손찌검까지 하는 날도 있다고 했다. 학부모 상담 때 교실에 찾아와 성욱이가 안쓰럽고 고맙다며 울먹이던 성욱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성욱이 부모님에게 오늘 일을 말하면 괜찮을까? 성욱이 아빠는 성욱이를 또 때리지는 않을까? 힘들게 삼 남매를 키우는 성욱이 엄마의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심정이지 않을까? 어이구 성욱이 이놈아 그놈의 새콤달콤이 뭐라고 이제 어쩌면 좋으냐!
"성욱아. 너와 나 사이에 남자 대 남자로 약속 하나만 하자. 네가 원하면 오늘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을게. 단, 너도 다시는 누군가의 것을 훔치지 마. 네가 오늘 한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야. 하지만 성욱이가 선생님의 소중한 제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오늘 한 너의 행동으로 인해 선생님이 너를 대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단, 이번 한 번뿐이야. 약속해 줄 수 있니?"
갑자기 목이 메었다. 말을 하는데 나도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아이는 우는 와중에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약속했다. 그리고 꼭 안아줬다. 땀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내 옷도 젖었지만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나는 결국 성욱이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아이와 약속을 해버리는 바람에.
퇴근하면서 슈퍼에 들렸다. 주인 할머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만원 한 장을 내밀었다.
"아이고 애들이 크면서 그럴 수도 있지 뭘 슨상님이 오셔서 이러면 어쩌나 응?"
"아닙니다 그래도 받으세요. 저희 반 학생인데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이거라도 받아주셔야 제 마음이 편하죠."
"내가 한평생 여기 있었는데. 그동안 물건 훔친 애가 어디 그 애 한 명이겠어?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뭐."
역정을 내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한 사코 거절하는 손 위에 돈을 올려드리며 앞으로 찾아오는 애들도 예쁘게 봐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2013년 여름. 평소보다 늦은 퇴근길에 자동차 유리 너머로 비추는 노을이 유난히 예쁘게 보였다. 내 마음에 성욱이라는 존재가 깊이 자리 잡은 날이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