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손, 그리고 뽀뽀

-가족(1)-

by 허우영

1980년대, 충북 충주에 속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28살 청년이 있었다. 그는 같은 마을에서 자란 고향 후배이자 이제 막 작은 소품가게를 시작한 젊은 여성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둘은 곧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제 만으로 22살밖에 되지 않은 집안의 장녀를 6살 많은 백수에게 시집보낼 수 없다는 예비 장모의 엄포에 남자는 서둘러 직장을 구해야 했다. 오직 결혼해야겠다는 일념으로. 6개월 공부한 끝에 그는 법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1984년 11월, 그는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어려운 형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유년 시절을 보낸 오 형제 중의 넷째. 아버지의 따뜻한 품은커녕, 홀로 자식들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응석도 못 부려보고 자란 그에게 결혼은 어쩌면 진짜 자신만의 가족을 이루는 첫 단추였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전쟁과 가난을 극복했을 즈음 많은 부모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제 내 자식만큼은 따뜻한 부모의 품을 마음껏 느끼면서 가난이라는 것은 모르고 살게 하고 싶다고.



아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아빠 엄마 손을 양쪽에 하나씩 붙잡고 길을 걷는 장면이다. 셋이서 빠르게 걷다가 아빠와 엄마가 갑자기 손을 위로 휙~ 하고 당기면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는데 꼭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형제가 없는 외아들이라 더 자주 누린 특권(?) 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길을 걷다 문구점에 진열된 무언가를 사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아빠는 슬쩍 나를 잡아당겼고 엄마를 잡은 내 손도 슬쩍 빠져나왔다. 엄마의 말로는 당시 뭔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아빠와 나는 문구점에 이미 들어가서 물건을 고르고 있더란다. 그렇게 장난감 하나를 사서 한 손으로 붙잡고, 반대쪽 손으로 아빠 손을 잡고 걷는 그 순간이 그 시절 코흘리개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금은 장난감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아빠의 손만 생각난다. 장난감은 차갑고 아빠 손은 따뜻해서? 아니면 장난감을 사준 사람이 아빠라서? 잘 모르겠다. 그냥 아빠 손을 잡고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했나 보다.


아빠가 출근하는 아침에는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먼저 아빠는 아침에 마신 커피잔에 몇 방울 정도의 커피를 남겨 논다. 그러면 내가 얼른 가서 커피잔에 얼굴을 넣을 것처럼 잔을 들고서 한 두 방울의 커피 맛을 본다. 달짝지근한 설탕 맛을 음미하며 나도 어른이 되면 꼭 이걸 한 컵 다 마시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현관 앞에서 아빠와 인사를 나누는데 내 입술로 아빠의 양쪽 볼과 이마, 코, 마지막으로 입술까지 뽀뽀 도장을 찍는 것이다. 턱도 하려다가 턱수염이 너무 까칠 거려서 안 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고 있다. 그리고 아빠가 나가면 다시 창문으로 밖을 보며 아빠에게 손을 흔든다. 청주 상당구 사직동에 있던 공무원 임대주택 3층. 그곳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면 아빠의 모습이 적당히 가깝게 보여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 좋았다. 그렇게 손을 흔들다가 아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면 슬슬 유치원 갈 준비를 하는 게 그 당시 5살 꼬마아이의 아침 등원 순서였다. 어찌 그렇게 잘 기억하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시절 꼬맹이도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계속 기억을 꺼내왔던 것 같다. 10대 시절에도 잠시 꺼내보고. 20대에도 꺼내보고. 그래서 40대인 지금도 꺼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빠에 대한 기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