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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man Jun 11. 2023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3년을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종이 한 장의 학위겠지만 그동안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해왔다. 사람 만나는 일도 줄이고, 쉬는 날도 반납해 가며 그 일에 집중해 갔다. 어쨌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만날 날이 있으면 억지로 시간을 내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일쑤였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일도 있어야겠지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잠시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얼마나 섭섭하고 속상하겠지만, 독박 육아에도 불구하고 못난 남편 그놈의 학위 수여를 위해 대신 희생하고 있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어쨌든 결과가 나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얼추 마무리가 되어 심사를 기다리게 되었다. 좋은 결과는 아니겠지만 열심에 보상을 받은 듯 통과는 될 줄 알고 심사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흘러간다면 어쨌든 통과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데...


큰일이 나고 말았다. 전혀 예상 못할 일이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지도해 주신 선생님이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고 말았다. 평소 통화하고 만나보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선생님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어떻게 보면 그동안 너무나도 감사했던 선생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평소 나와는 다르게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당연히 3년 동안 애썼던 그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해 보였다. 한 학기를 미뤄야 하는 상황도 참으로 당황스럽지만 내 것보다 선생님의 건강이 먼저 걱정이 들어서 내 마음은 안되었다는 좌절보다 선생님을 향한 걱정이 커버리고 말았다. 혹여나 불편한 마음을 드릴 수 있어서 미처 전화는 못 드리고 어렵게 문자를 보내드렸다.      


10분 뒤였을까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평소와 동일한 말투와 보다 무겁지 않은 그런 목소리가 내 전화기에서 울렸을 때는 어찌할 바 몰랐다. 위로를 해드려야 하나 아님 조심스럽게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나 한참 고민이 들었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제자를 향해 우리 선생님은 참 밝은 목소리로 나를 도리어 위로해 주셨다. 곧 심사일일 텐데 나 때문에 염려가 있을 나를 도리어 위로하시며 끝까지 함께 해주신다는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참으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선생님께 해드리지 못했는데 도리어 나를 위로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 곧 심사가 되냐 마냐, 통과가 되냐 마냐라며 걱정하고 염려했던 나의 모습이 잠시 부끄러워졌다.      


참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참 반갑지 않고, 그저 듣기가 싫다. 좋은 소식이면 좋으련만 늘 나쁜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참으로 사랑했던 할머니께서 소천했던 소식, 참으로 좋아했던 대학교 동기의 죽음, 함께 일하는 동료직원의 가족의 갑작스러운 소식, 믿었고 존중했던 선배들의 안 좋은 소식,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 교통사고의 소식 등등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면 나의 인생이 참 허무하며 내가 이렇게 애써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갑자기 떠나 버리는 그 슬픔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세상이 싫었고 그렇게 애쓰며 버티고자 했던 나의 모습이 참으로 불쌍히 보이기만 했다. 나를 위한 삶도 삶이지만 그동안 그들을 살펴보지 못하는 미안함과 함께 도리어 제대로 상처받고 넘어진 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하며 줄곧 열심을 다했던 나의 못난 모습이 계속 생각이 나서 더욱 눈물이 내 눈을 가린다.      


허무한 이 인생 이렇게까지 열심을 다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내려놓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느 날 우리 아내가 예전 일어났던 사고로 인해 아직도 헤아리지 못해 힘들어하는 지인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오로지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지인을 만나는 날이면 평소와 다르게 참으로 힘들어했고 그 답답함과 어려움이 고스란히 나한테 전해졌다. 나도 힘들어 아내에게 말하고 싶어도 벌써부터 지치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게 되니 도리어 나의 말이 잊히기 시작하였다. 벌써부터 그 상황에 깊이 빠져 있는 아내는 자기의 삶조차 지옥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아내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자기야! 자기가 위로해주려고 해서 만나는 것 같은데, 도리어 그의 상황에 깊이 빠져 있어 어느 날부터 힘들어하는 것 같아!”     


고통스러운 그분의 상황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감까지 할 수 있을까?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어설픈 위로가 상처가 될 수 있어 나와 우리 아내는 그 가족을 위해 오로지 기도만 해줄 뿐이다. 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우며, 이 세상을 살아갈 조금의 힘도 있을까 싶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일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나로서도 참으로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찌할 수 없어 그저 내 품에 한참 울던 그의 마음이 아직도 내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어찌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절대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사정과 환경은 다르지만 나름 고통스럽게 산다. 때론 그것이 몸소 표현되기도 하지만 애써 숨기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여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의 섣부른 위로는 도리어 상처로 받는지도 모르겠다.      


한평생 얼마나 이런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사는 것일까? 아마 우리들의 인생은 높이와 깊이의 차이가 있겠지만 행복과 또 다른 어려움이 곧 우리 인생 가운데 자주 겪게 되는 감기 같은 그런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못나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나서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늘 우리들의 삶에는 행복과 함께 어려움이 있다. 꾸준히 행복한 일들이 있어도 때론 고난 등의 브레이크로 잠시 쉬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우리들의 인생 속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때론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과 고난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버거운 일들도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버겁고, 참기 힘들고,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있냐며 원망도 클 것이다. 그런데 그였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잠시 쉬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를 바란다.      


인생을 살다 보니 참으로 이해 못 할 일들이 참 많다.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인생이 아닐지라도 잠시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의 적게 경험한 인생의 답으로, 넓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그 넓은 우주 같은 우리 인생을 한 톨이라도 이해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마음으로 지금 나의 상황을 인정하고 천천히 그 길을 걷게 된다면 결국 깨닫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조금이나마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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