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고통스러웠던 지난 과거 생활

2편. 광야의 길을 건너갈 때

by Happyman


훈훈한 마무리 그리고 아쉬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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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새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기도 했고 더 이상 예전같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내 마음 안에는 아직도 섭섭함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내는 사직서는 절대 반려가 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곧 가게 될 곳이 정해졌기 때문에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내 안에 아직도 있는 섭섭함 들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들도 많이 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

‘다른 곳에서 더욱 잘한다면 그것이 나름 복수 아니겠어?’

앞선 나의 미래만 생각했을 뿐 그 이상으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체 새롭게 일하게 될 그곳을 생각하며 나름 마음도 정리하고 10년의 세월의 짐들도 하나하나씩 정리하였다.

미운 마음이 많이 들지만 직원들 한 명 한 명 불러 “미안했어요!” “고마웠어요!” “고생 많이 했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도 쌓인 상처들을 지워주기를 바랐다.

날카로우면서도 일을 벌이기만 한 부서장 곁에서 고생만 한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기도 했다. 특별히 무엇을 해 줄 것이 없었다. 예전과 다르게 보다 진심으로 다가가 나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진심을 다해 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퇴사하는 날짜가 많이 남지 않아서 그런지 도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해야 할 나의 일에 대한 부담스러운 생각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의 삶을 반성하며 하나하나씩 정리하는데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너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 또한 이곳에서 나가기 싫었고 어떻게 보면 10년 동안 베테랑처럼 살아와서 이젠 이 일들도 많이 익숙해져 갔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나를 원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나만 고생한 것 같아서 섭섭한 마음은 식을 줄 몰랐다.

그래도 어떻게든 간에 나를 불러서 고생했다는 말을 건넬 줄 알았는데 끝가지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밥 한번 사주면서 그간 고생이 많았다고 이야기를 해 줄 법한데 그것은 나의 욕심이었었다.

정말 끝이 났다. 정말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꼭 내가 진 듯 한 기분이 많이 들었지만 정말 거기서 끝이었다.

10년의 인연은 정말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몇 달간은 섭섭함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고, 억울한 감정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역시 사회생활은 냉정하다니까!’




새로운 도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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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장 자리가 났는데, 한번 일해 볼 생각이 없어?”

갑작스럽게 면접을 보게 되었고 어떨 결에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곳에서 좀 더 높은 자리에서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듯했다.

새롭게 일하게 된 법인에서 예정일보다 좀 더 일찍 오기를 바라여서, 3일 전에 먼저 출근을 시작했다. 법인의 사무실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새롭게 일하는 곳이기도 하고 10년 동안 일했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된다고 하니 기대가 매우 컸던 것 같다.

새로운 직장의 사무국장의 역할이 매우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새롭게 일하는 모든 것들과 이번 기회로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져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 위의 상사의 모습은 평소 만났던 사람과는 정말 달랐다. 때론 무례하게 하는 것 같아 직장생활이 참 불편했다.

일한 지 1달도 안 되는 시점인데도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시간을 두고 하고자 하는 일들을 풀어갈 생각이었다.

나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는지 아님 자기 손안에 있게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직장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또한 낯선 경험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겠지라는 생각에 그의 말과 행동에 박자를 맞혀주려고 하였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이 싫었지만 그래도 그 환경에서 살아나고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와 다른 마음과 모습으로 그를 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이 찾아오게 되었다.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내가 시간을 많이 줬는데 잘 못하는 것 같으니 기존하였던 사무국장 업무 중의 일부를 자기한테 넘기라는 것이었다.

“그럼 그 이야기는 제가 그만두라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란다. 오로지 회계업무만 넘기라는 거란다. 그런데 업무만 넘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두라는 신호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상처 받은 나로서는 그 사람과의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또한 일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중요할 건데 이렇게 존중받지 못하고 늘 괴롭힘을 받는 것 같은 이 곳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 다짐했던 모든 비전들과 꿈들이 한순간에 없어졌다.

당장 일할 곳이 없었지만 그렇게 끝낼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하였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온 내 모습이 참 많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이젠 어쩌다 실직자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취업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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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실업자 생활을 시작하고 있을 때 빠른 시일 내에 취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지금까지 못나게 산 것도 아니고 무능력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취업이 될 줄 알았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코로나 19가 줄어들기보다는 점차 확대될 뿐이었다. 인근 지역의 많은 지역 주민들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소식이 매일 나타나고 있었다. 가고자 하는 기관인 경우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확대 우려로 인하여 도리어 기관을 운영을 정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 기관들은 평소보다 사람을 덜 뽑았다. 더더욱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나는, 관리자로서 일했던 나는 직급에 맞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힘들었다.

사실 직급을 낮춰 새롭게 일할 자신이 솔직히 없었으며, 전 직장에서 당당히 나왔었는데 결국 더 안 좋은 여건에서 일하는 나를 보는 그들이 얼마나 비웃겠는가? 돈도 돈이지만 그들 때문이라도 잘해야 한다는, 좋은 곳에서 일한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통 알맞은 자리가 나오질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취업 사이트를 수백 번 들어가 찾아봐도 적당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우연히 지인 분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지금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먼저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좋은 일자리 추천을 위해 전화를 걸어주셨다.

“어디에 자리가 났는데, 한번 일할 생각이 없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연결해 주셔서 감사함을 전하고 당연히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당황스럽게도 어떠한 이유로 인하여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될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안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충격이 평소보다 크게 느껴졌다. 더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번 채용에서 떨어졌으니 처음에 요청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보다 기회조차 놓쳐버렸고, 그곳을 먼저 선택을 하고 밀고 붙였으면 지긋지긋한 실직자 생활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는데 라는 아쉬움이 크게 밀려왔다.

‘버스는 벌써 지나갔습니다!’


어설픈 경력 탓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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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채용 참여뿐만 아니라 채용 사이트에서 나오는 데로 즉시 채용 서류를 접수시켰다. 그런데 서류 심사에서 탈락되는 경우도 있었고 면접 과정까지 참여하였지만 결국 떨어지는 당황스러운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원했던 직급을 내려놓고 좀 더 아래 직급으로 채용에 응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내가 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일을 평생토록 아님 장기적으로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하니 불안함도 함께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채용공고에서 낮은 직급을 뽑는 회사도 응시하게 되었다. 그래도 기존 경력을 인정해주었는지 서류심사는 대부분 합격하게 되었다.

그런데 면접 과정에서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문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때론 면접 과정을 잘 준비 못해 면접을 잘못 보기도 했지만 사무국장까지 일한 사람이 훨씬 낮은 팀장 자리에 응시하는 것을 매우 의아하게 여겼다. 어떻게 보면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경력을 인정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될 텐데 그들보다 높은 경력을 가진 팀장이 오게 되면 나보다 낮은 경력을 가진 사람이 과장이나 부장이면 얼마나 내가 부담스럽겠는가? 또한 높은 경력자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급여를 주는 것도 솔직히 부담이 될 듯했다.

우연히 사무국장이나 부장 채용에 응시하게 되면 나의 도전에 감명을 받았는지 서류심사를 통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크게 기대도 안 했던 회사의 면접 과정에서는 면접을 매우 잘 보았다고 해도 사무국장 및 부장을 수행할 만한 경력이 매우 부족하게 여기거나 만 40이 안된 나를 매우 어리게 보거나, 사무국장(부장)으로서 원활하게 업무수행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매우 크게 느끼곤 하였다.

“그럴 거면 왜 면접까지 볼 수 있게 하는 거야?”

결국 떨어지기는 했지만 어설픈 경력 때문인지 기존 자리에 맞는 때론 보다 높은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없었고 낮은 직급의 자리에서 일하고 하는 겸손한 마음은 컸지만 현실은 그렇게 나를 받아주지 못했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감과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점차 불합격이 되어 보니 점차 자신감이 떨어지고 나의 상황이 매우 불안하게 느껴졌다.

항상 이랬다. 빨리 취업을 할 줄 알았는데 상상하지 못하는 이런저런 일들로 인하여 취업하기 더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대단했었는데 점차 불합격의 경험을 해보게 되니 점차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정말 어디서 일할 수 있을까? 어디를 가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운 광야의 길을 건너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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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일들이 계속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나의 삶 속에서 희망도 빛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삶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낫겠구나 라는 생각만 들 정도였다.

이 정도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 어쩔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과거에 그리 못된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꼭 혼을 내는 듯 한 기분이었다.

남들의 위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오해만 더욱 쌓일 뿐이었고 더욱 비참해지는 것만 같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나의 자리를 알아봐 주기 위해서 노력을 해주었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예전처럼 보다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조차 너무 감사한 일인데 결론적으로 안 되고 실질자로 계속 살다 보니 그들을 향한 많은 미움과 원망도 컸고 섭섭함과 힘들어함도 함께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왜 나만 이런 일들이 줄기차게 나타나는 걸까? 그저 나에게만 탓하게 되었고,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혼자 남게 되었을 때는 그 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나에 대한 좌절감,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감, 세상과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 모두가 나를 계속 힘들게만 했다.

그냥 포기해버릴까라는 생각을 수백 번 수천 번을 한 것 같다. 내 눈 앞에 있는 자식들과 아내가 생각이 나서 생각을 고치고 또 고쳐보지만 벌써 낙심된 내 마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그 길로 가는 듯했다.

작은 불빛 하나, 작은 희망이 보인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나만 왜 이리 힘드냐며 소리를 질러봐도 들려오는 것은 나의 목소리 뿐이었다. 원망하고 화를 내도 돌아오는 것은 나의 마음에 새겨진 큰 상처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상황을 원망하면서 그저 정말 길이 있을까? 내가 그 길을 갈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만 반복적으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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