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태우는 대국적인 군상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그날을 다시, 오늘에게

by 제트별
무려 트레블 위너

적지 않은 ‘일부’에게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추앙받는 그는 여러모로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공과 과를 따로 봐야 한다는 허울 좋은 잣대가 반강제로 들이밀어지는 가장 민감한 표본이며, 하나를 제대로 하기도 벅찰 일생에서 친일, 빨갱이, 독재를 싹 다 거머쥐는 위업을 달성한 트레블 위너이기도 하다. 그러한 삶을 반영하듯 마무리 역시 일반적이지 않았다. 절대로 대국적이지 못했던 그는 야수의 심정을 가진 대국적인 부하 덕분에 나름 대국적인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현대사의 탕아나 다름없는 그가 진탕 쌓아올렸던 과(過)의 부채는 그러한 대국적인 마침표만으로는 결코 먼지만큼의 탕감도 되지 못할 것이나, 쿠데타와 독재를 바탕으로 고삐 없이 내달린 18년의 민주주의 탕진 기록에 ‘일단은’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점에서 소탕한 위로는 챙길 수 있겠다. 물론 그다음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닥쳐오는 빛의 비극으로 그 위로마저 빼앗긴다는 게 너무나도 큰 아픔이지만.



나한테 왜 그랬어요

영화는 시종일관 서늘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한 인물의 고뇌를 축으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궁극적으로는 ‘왜’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영화는 지그시 생각거리를 남겨두며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그 답은 후련함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움 그리고 갈증을 파생시키는데, 전자의 감정은 신(新)자를 붙이고 겨울을 장악했던 악(惡)의 등장 때문이며, 후자의 감정은 당사자만이 알고 있을 진실이 꽂힌 또 다른 ‘왜’의 발생 때문이었다. 왜 돌렸는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결코 얻지 못할 답을 갈구하는 질문만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릴 뿐이다.



우리는 알 수 없지

이 ‘왜’의 물음 이전에, 그날에 당도하게 된 ‘왜’를 먼저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는 ‘왜’ 쏘았는가? 여러 설이 분분하고 딱 ‘이거다’라고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당사자만이 가지고 있을 진실을 알 길이 없으나, 여하튼 복합적인 이유들이 맞물렸을 가능성이 높다.


2인자 자리를 두고 벌인 충성 경쟁 + 감정마저 옅어진 윗대가리들의 민간인 학살 + 당시 혁명(군사정변) 목적의 소멸 + 1인자의 끔찍한 사리사욕 질주 + 미국과의 관계 등의 상황들이 자아내는 소용돌이는,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지점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를 ‘왜’ 돌렸는가? 우발적이었다기엔 계획적이었고, 계획적이었다기엔 우발적이었던 그날. 이 유턴은 말 그대로 혹독한 미궁이다. 이후를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겠고, 육본행으로는, 아니 어차피 남산행으로도 군을 장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테다.



그는 대국적이었다

결정적으로, 거사를 치른 뒤, 어쩌면 준비하면서부터 혼란스러웠을 심리 상태가 그의 마지막 행선지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공산이 크다. 때문에 영화가 보여주는 그 팽팽한 심리의 결은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아주 적절히 힘을 보탠다. 더불어 총성이 울려 퍼지는 시점의 롱테이크는, 역사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혹여나 잘못될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저력을 보여주어 진이 다 빠질 정도였다.


그날의, 그의 속내의 명확한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의 진실은 더없이 명확하다. 현재 서서히 그리고 짙게 그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 상당히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지독하게 우상화된 혁명의 배신자를 처단한 그야말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대국적인 군상(軍像)이다.

이전 15화3인 3색의 절정, <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