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네트> 2021, 레오 까락스
"So, May We Start?"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꽤 여러 번 물으니까 가능한 한 최대한의 들숨으로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준비할 틈도 없이 진행되는 실전의 연속이지만, 적어도 이번의 경우와 같이 상영관 의자에 앉아있는 순간만큼은, 다른 세상에 발을 담가보는 순간만큼은, 일종의 유예와 더불어 소소한 각오의 찰나를 마련해준다.
다만 그러한 모양새로 체험을 곁들인 장이라 아예 진하게 선언하는 황홀한 오프닝에 시작 전 끌어모은 에너지를 전부 소비치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구축해놓은 듯한 전개의 줄기는 생각보다 거칠고 사늘하기 때문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 여정은 감독과의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리에 맞춰 깜빡거리는 불빛이 괜히 눈에 밟힌다. 사실 그전에 음파를 연상케 하는 바깥의 빨간 불빛부터 심상치 않았다. 전체적인 틀을 구성하는 특유의 이질감은 생각보다 더 일찍 스타트를 끊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하게 인위적이면서 능글맞게 천연적인, 그러한 모순에 덧칠된 극의 재생 바가 시종일관 오감을 자극하며 반응을 살핀다.
마냥 불쾌함과 불편함으로만 다다르지 않는 이 심경이 무척이나 괴이하다. 그러든지 말든지, 너무나도 무심하게 장면을 붙여간다.
아랑곳하지 않고, 탐욕을 품은 갈망과 선을 넘는 착취를 폭로하고, 폭주하는 인간상을 묘사하며, 역으로 심연에 매몰된 악을 응시한다. 부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철퇴를 내리는 귀결은, 그간의 응축된 감정을 표류하게 만든다.
아울러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당부까지 받으며 고분고분 별을 새기게 되었으므로, 이 대결에서 명백하게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