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ransit> 2018, 크리스티안 펫졸드
“선생님. 여기가 바로 지옥입니다.” 사실 전부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악랄했으나, 작가의 묘사 덕에 덜 악랄하게 느껴졌다는 그의 말처럼, 제3자를 통해 전달되는 이 이야기 역시 우리가 1차적으로 가져갔을 느낌이 체에 밭쳐져 오묘하게 블러 처리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 카메라는 직접적으로 한 인물을 좇으며 또각또각 발걸음을 이어가지만, 충실한 관찰자 시점은 제법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차지한다.
때문에 온전히 그에게 이입되어 그의 입장에서 이리저리 발품을 팔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저만치 떨어진 화자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지켜보게 된다. 이 시점은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라는, 우리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대변하면서, 교묘히 접목된 현대 배경과 시너지를 이루며 건조하고 쓸쓸한 시선에 밀도를 더한다.
영화는 뒷모습, 부재, 그리고 삭제를 한 줄로 꿰어 피사체를 구축한다. 마르세유에 도착하자마자 내버려 두고 먼발치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하인츠의 뒷모습을 시작으로, 마리가 몇 번씩이나 바이델로 착각하게끔 만든 게오르그의 뒷모습이 전시된다. 이 뒷모습은 곧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부재라는 원인의 매개체를 무대 위로 올려놓는다.
게오르그는 하인츠, 바이델의 자리를 메우며 각각 드리스와 멜리사, 마리와의 연결 고리를 획득한다. 이 고리의 색깔이 점점 진해지는 와중에도 떠남과 남겨짐의 수는 겹겹이 쌓이고, 곧 거대한 삭제행 티켓이 발급되어 도착지의 그늘은 더욱 짙어진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 떠나려는 자와 남으려는 자, 그리고 떠나보내려는 자가 뒤섞인, 혼돈의 밑창이 깔린 준주도적인 전개의 발자국은 꽤나 날카롭게 주변을 쓸어 담으면서 예상치 못한 몇몇 지점에 스포트라이트를 남긴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들의 이미지는 난민이라는 화두에 닻을 걸고 감정을 박아 넣으며, 항구에 당도한 그들은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고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란다는 가녀린 절박함을 연사 한다.
그렇게 펼쳤던 절박한 이미지를 몇몇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송두리째 소거하는 단호함은 서늘하다 못해 씁쓸한 지옥도에 붓질을 쌓는다.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누가 더 빨리 잊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아무도 남지 못하는 이 지옥에서 외로이 표류하고 만다.
두고 가도 되냐는 그 글 뭉치만이, 비등비등했던 관계가 역전되어 화자이자 타자로 어느새 그와 거리를 두게 된 우리에게로 정착한다.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는 그를, 우리는 이제 저만치 더 떨어져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