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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어택 Nov 20. 2019

직장인이 로또를 사는 이유

기댓값과 효용


우리는 왜 로또를 살까?


수학적으로 본다면, 로또를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1000원짜리 로또 한 장을 사면 그중 약 500원은 복권기금과 판매점 수수료 등의 사업비로 사용되고, 나머지 약 500원만 당첨금으로 사용된다. 다른 물건과 비교해보면 로또의 원가는 500원인 것이다. 심지어 높은 금액에 당첨되면 세금까지 내야 하므로, 1000원을 주고 로또를 샀을 때의 기댓값(나에게 돌아올 것으로 기대되는 금액)은 그 절반인 500원 미만이다. 따라서 수학적으로는 1000원짜리 로또를 살 때마다 기본적으로 500원 이상은 버리고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매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것일까?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효용’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이를 설명할 수도 있다. 로또를 사면서 지불하고 얻을 수 있는 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만족을 측정하는 것이다. 로또를 사면서 1000원을 지불함으로써 효용이 “–100”이 되었다면, 로또의 원가를 생각했을 때 로또에 당첨됨으로써 기대되는 효용은 “+50”정도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로또에는 분명 오락적 요소가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월요일에 로또를 구입하고 당첨자를 추첨하는 토요일을 기다리며 일주일의 활력소로 삼기도 한다. 비록 당첨되지 않더라도 당첨에 대한 기대감이 주는 행복으로 로또를 사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조금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000원을 내고 815만 분의 1 확률로 30억 원을 받는 것이 로또라고 한다면, 로또를 사려는 사람에게 10만 원을 내고 같은 확률로 3000억 원을 받는 복권을 권할 겨우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00원밖에 되지 않기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이고, 이러한 재미가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도 한다.


또한 원가 500원을 제외한 나머지 500원 중 사업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금액이 복권기금으로 공익사업에 사용된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나의 돈이 어차피 좋은 곳에 사용되었을 것이므로, 그저 좋은 곳에 기부하였다는 생각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로또의 원가(당첨)가 주는 효용이 “+50”이고, 오락적인 만족감이 “+30”, 기부에 의한 만족감이 “+30”이 된다면, 가격이 “-100”인 로또는 효용의 관점에서 구매하는 것이 이익이다.



오락과 기부.

나도 이렇게만 생각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매주 로또를 구입하며 헛된 희망을 꿈꾸게 되기 전까지는...


사실 로또의 과거 슬로건이 「절반의 행운, 절반의 기부」였고, 복권기금을 공익사업에 사용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보면, 위에서 설명한 오락과 기부는 이미 이전부터 판매기관에서 로또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로또가 오락이자 기부의 수단이라면, 가난한 사람보다 부유한 사람이 로또를 더 많이 사는 것이 정상이고, 경기가 좋아질수록 오락과 기부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살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로또를 훨씬 더 많이 사고, 경기가 불황일수록 로또의 판매량은 더욱 높아진다.


매주 정기적으로 로또를 구입하는 나에게도, 오락과 기부는 이미 배부른 이야기이다. 지난 일 년간, 나는 아내와 열두 평짜리 전셋집에서 맞벌이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SNS에 올라오는 근사한 맛집도 가지 않고 좋은 옷도 사치로만 여기면서, 언젠가 우리도 서울에서 집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보니, 열심히 돈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의 집값은 그 사이 우리가 모은 돈의 두 배 이상 올라버렸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된 사회에서 로또를 사지 않고 1000원을 아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815만 분의 1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로또에 살 1000원을 아껴가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을 때 서울의 좋은 집을 살 수 있는 확률이 과연 815만 분의 1보다 높을까?


로또 명당이라고 하는 곳에 붐비는 수많은 사람들도, 오락과 기부를 위해 그곳에 앉아 어떤 번호를 찍을지 골머리를 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수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 이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성실하게 일을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적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로또 추첨방송을 보고 낙첨된 로또를 휴지통에 버리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래도 이 로또가 일주일간의 직장생활의 활력소였다고. 그리고 비록 낙첨되었지만 내 돈은 좋은 곳에 쓰이겠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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