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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Feb 13. 2021

그래도 이 정도면 승리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 리뷰


2092년, 숲은 사라지고 지구는 사막이 늘어가면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우주개발기업 UTS는 위성 궤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었지만, 선택받은 5%만이 그곳에 살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병든 지구에서 방독면을 쓴 채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


김태호와 장선장 등 '승리호'의 선원들은 낡은 우주 청소선으로 우주 쓰레기를 주워다 팔아가며 겨우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어느 날 이들은 사고 우주정 속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내장한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다. 이들은 '도로시'를 거액의 돈과 맞바꾸어 지금의 생활을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 거래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알고 보니 지구의 미래도 달려 있었다. 과연 이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본 리뷰는 영화 <승리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끔 영화 중에 그런 영화가 있다.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그냥 이 영화가 잘 되었으면 하는 그런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가 그런 영화였다.


<승리호>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전쟁과 모험을 다룬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영화이다. 이런 장르는 기본적으로 고도의 CG 기술과 거대 자본이 필요하므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시도하지 못한 장르였다. 우리의 눈은 이미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소자본으로 이런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도 크게 흥행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승리호>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승리호>는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 넷플릭스 랭크 1위를 차지했다. <승리호>의 제작비는 총 240억 원으로 할리우드 영화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1억 7천만 달러), <인터스텔라>(1억 6천만 달러), <그래비티>(1억 달러) 등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자본으로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호>는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CG와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특히 초반의 우주 쓰레기 추격씬과 후반부 전투씬은 굉장히 속도감이 있었고, 한국 영화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CG와 스케일로 시청자를 압도했다.




<승리호>는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장르를 성공적으로 개척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들 스스로가 기술력이 영어권 국가가 훨씬 뛰어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전한 기술력을 다루는 SF영화는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왔다. 대표적으로 과거 한국 영화 중 <열한시>를 보면, 저예산 영화이기도 했지만 한국인이 중심이 되어 타임머신을 다루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승리호>에서는 <설국열차(2013)>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술과 자본의 중심에는 서양인이 있고 한국인은 피지배층으로 설정하였다.


스토리와 개연성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주인공 일당을 피지배층으로 설정하면서도 우주 전투 신을 넣으려고 무리하다 보니 개연성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주인공 일당은 현재로 치면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 먹고사는 최하층민인데, 제작비뿐만 아니라 연료값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우주선을 몰고 다닌다는 것은 그리 와 닿지 않는다. 애초에 이들을 UTS에 고용되어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으로 표현하거나, 과거 우주선을 몰았던 실력으로 UTS의 우주선을 탈취해서 싸운다는 설정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한국 영화가 비난받기 쉬운 요소 중 하나가 '신파'이다. 특히 최근 개봉한 <반도>신파만 줄였어도 명작이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승리호>도 김태호의 과거 회상 씬과 그가 꽃님이를 통해 점차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소 과한 신파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 오늘도 한 번 벌어볼까?"와 같이 오글거리는 대사들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영화는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화려한 비주얼보다는 서사에 집중하는 특성이 있고, 또 이러한 특성이 때로는 한국 영화의 장점이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대하게 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뒤지지 않는 CG와 외국 배우들을 통해 그동안 한국영화가 하지 못한 새로운 시도를 한 영화인만큼 신파도 조금 줄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위에서 언급한 <설국열차(2013)>는 우주라는 점만 빼면 <승리호>와 비슷한 설정인데, 이러한 한국식 신파를 완전히 배제한 덕에 모르고 보면 한국영화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쉽지 않았다.


서사에 집중하는 것이 한국영화의 장점이라면, 이 장점을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김태호를 제외한 다른 일당들의 이야기는 한두 마디 설명으로 요약될 뿐이다. 특히 악당인 설리반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최근 영화의 트렌드는 빌런마저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리는 것이다. <어벤져스>의 타노스나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악당이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팬덤을 보유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빌런인 설리반은 흥분할 때 핏줄이 튀어나오며 피부가 이상하게 변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결국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어린 여자 아이가 주인공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설정은 우리가 <레옹>에서 이미 보았던 이야기인데, 이것도 <레옹>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마약에 심취하는 악당 게리 올드만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그럼에도 <승리호>가 잘 되었으면 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이러한 한국형 SF 영화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승리호>는 처음에는 극장 상영을 목표로 제작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두 번이나 개봉이 연기된 후 넷플릭스를 통해 독점 공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런 스케일의 우주 블록버스터를 극장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극장에서 개봉했을 경우 손익분기점은 관객수 약 580만 명이었다. 아마도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승리호>는 천만 관객을 쉽게 달성했을 것 같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지만 후속작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면 꽤나 흥행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주연 캐릭터 4명을 모두 살려둔 것이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의 죽음이나 희생에도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브루스 웨인이나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블랙위도우는 주인공이 희생을 한 덕에 결말이 더욱 빛났다.  <승리호>에서도 김태호를 비롯한 주연 인물들이 지구를 살리기 위해 희생을 각오하지만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설정을 동원하면서까지 주연 캐릭터 모두를 살린다. 이는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4명의 캐릭터를 모두 살려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단독 개봉한 것은 지금은 아쉽지만 좋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대중적인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으니 후속작이 나온다면 더욱 흥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형 SF'를 멋지게 전 세계에 공개한 셈이니 향후에도 한국에서 훌륭한 SF영화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울트론이 새 몸을 만들기 위해 잠입하는 연구소로 우리나라가 등장한다. 이 당시에 과학 기술의 강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이 촬영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SF 영화 속에서 과학과 기술의 중심에는 서양인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편견일 뿐이다. 앞으로 '한국형 SF'가 나올 때는 한국인들이 중심이 되고, 이를 우리 스스로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날이 오지 않을까?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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