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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Feb 16. 2016

우연히 들른 중산간의 방주교회

- 영발이 강한 산하를 논하다 -

     


영적인 기운이 세다는 지역은  한결같은 느낌을 준다. 사람 살기 참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영적인 장소들이 보여주는 기운이란 인간들이 사는 일상적인 장소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늘의 기운을 받았다는 태백산 정상을 올라서도 마찬가지 경험을 기억한다.  산아래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풍광 산세 등을 느끼며 서있으면  우습게도 저절로 기도를 하고 싶어 진다.  특별한 대상과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낀다.     


‘아, 그래서 이곳에 옛부터 제단이 있었구나’      


천제단이 당연하다는 느낌이다. 그다지 어렵거나 고민하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몸이 느끼기 때문이다.     

제주에서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라산 백록담은 물론이고 영실이나 웃세오름, 주변의 드높은 오름 곳곳을 다녀봐도 이 같은 느낌은 예외 없이 자연스럽다.      


역으로 제주도에서 얼마나  먹고살기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라산세가 해안으로 내려가는 산간지역인 중산간에만 가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갔을까. 곧 기운이 세게 느껴지는 곳이 많고 풍광이 너무도 좋다는 이야기다.     


심성은 대체로 거짓과 관계가 없다

사막과 같은 척박함이나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게 하는 거대함이 아니더라도 심성은 대체로 거짓과 관계가 없다.      


제주 중산간의 풍광은 어김없이 탁 트인 시야와 바다가 있어 그 의미가 더욱 커진다. 곳곳에 솟아 오른 오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너머로 펼쳐지는 수평선과 하늘의 끝없는 이어짐은 설명만으로도 좋은 느낌이다. 자연의 일부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풍경들이다.     


제주의 겨울 날씨가 최악의 상황을 갱신해 나간지 벌서 2달은 족히 넘었다. 두 달여간 비바람이 치고 폭설로 공항이 폐쇄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주는 충격을 말하지 않더라도 제주의 겨울은 힘들다. 매일 아침 혹시 오늘은 해라도 볼 수 있으려나 하지만 어김없이 흐릿한 날씨에 바람이 불어 대는 데는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아침 해를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매일 매일 샘솟는다. 더불어 겨울에 대한 애증도 쌓이는 순간, 종종 영국의 날씨가 아마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흐리고 비 오고 바람 불고 태양은 있으되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차를 몰고 지나다 방주교회에 다달았다. 본태박물관을 향한 발걸음이 몇 백 미터 앞에서 떡 하니 서있는 각진 건물을 만나고 ‘ㅎ’ 자가 포함된 번호판을 단 하얀 승용차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주차장에서 언뜻 또 다른 관광지로 여겨지는 곳에 발길을 멈췄다. 방주교회다. 관광지는 아닌 교회다.      


말 그대로 방주(Ark)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요소를 담았다. 일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건축물로 순수한 의미의 교회다. 이 교회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건축물은 영적인 느낌을 받아들이는 좋은 매개체임이 분명하다. 평상시에 일반적인 교회건물과 십자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나조차 이 교회 앞에서는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흥을 느낀다. 종교의 힘이 아니라 그곳의 자연이 주는 메시지와 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교회라는 건축물이 가슴에 남겨놓은 빈 공간을 파고든다. 존재를 의식하는 것이 자연의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라도 하고 갈까.      


서귀포시 안덕면의 중산간에 덜렁 놓인 교회 하나. 집착은 아니지만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 결국 자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눈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와 산방산의 느낌을 가슴에 담으며 옛적 사람들은 이곳의 기운에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 오늘도 살아있음을 감사했을까. 오늘을 살아야 하기에  괴로워했을까. 마음먹기에 그날 하루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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