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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Feb 17. 2016

위미가는 길

제주의 남쪽 바다를 맞으러 가는 오후

밤새 몸이 아파 뒤척이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다시 비몽사몽간의 시간을 지나다 보니 시간이 궁금해졌다. 느낌이 온다. 지금쯤 정오에 가까웠을 것이다. 부스럭 잠자리 옆에 널부러져 있는 핸드폰을 눌렀다. 11시 50분. 오랫동안 잠들었다. 아니 아침까지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으니 5시간 정도 잔 듯 싶다. 잠자리가 무섭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      


찌푸둥한 몸에 맞춰 하늘도 잔뜩 찌푸리고 있다. 2달간 계속된 어쩔 수 없는 우울한 날씨 탓에 몸이 녹아내린다. 삭신이 쑤시고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다. 어딘가에 나가지 않으면 후회할 수 밖에 없는 하루다. 제주도에 와서 무시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향해 가기로 했다.     


하늘은 제주와 겨울이라는 말을 섞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네비를 선택하기로 했다. 기존의 네비게이션이 가르쳐 줄 길을 알고 있기에 다른 네비를 택했다. 예상대로 성판악을 거치는 5.16도로를 넘어 가라고 한다. 위미에 가야한다. 왜냐고 물으면 할 말은 그곳에 바다가 있어서다. 버릇처럼 넘어가는 길이다. 제주에서 서귀포로 가는 길의 목표지가 된지 벌써 1년이다.     


제주는 5분만 차를 타고 벗어나면 이곳이 도심인가 싶을 정도로 한적한 전원의 주택지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실을 지나 애조로와 만난 길은 곧이어 제주대학교 앞을 지나고 한라산을 향해 여지없이 업힐(uphill)의 여정이 시작된다. 한라산 중턱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며 오르는 길이다. 자동차도 이 길을 알기에 '부웅‘하며 엔진에 과부하 걸리는 소리를 계속 뿜어댄다.     


하늘은 제주와 겨울이라는 말을 섞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 들킬까 거센 바람으로 지금의 순간을 곱씹어보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휘몰아친다. 이 바람이면 저 구름도 몰려갈 듯 싶은데 나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날씨는 우울증과 더 가깝다. 굽이굽이 산을 향해 길이 이어진다.      


얼마전 내린 눈들이 다 녹아버려 이제 더 이상 눈 쌓인 겨울을 느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나보다. 어제의 기온이 최고 20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1도라니 어이가 없는 일교차다. 하루만에 20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인지 더 춥다. 이런 날씨를 어떻게 설명할까. 나무들은 이 느낌을 알몸으로 느낄터. 아직 푸르름을 간직한 곳과 가지만 앙상한 겨울의 을신년스러움을 함께 간직하며 지나는 차창뒤로 쓸쓸함을 계속 밀려 내보낸다. 한라생태숲이 옆으로 인사한다. 가본지 오래다. 생태숲도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제 교래리로 빠져나가는 길이 나올 것이고 넓은 목장지대가 나올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 자동차를 길가로 세웠다. 입에서 실실 웃음이 흘러 나온다. ‘그래 이맛이야.’ 그래서 이곳으로 차를 타고 온 것이다. 저 멀리 굽이굽이 오름 꼭대기에 희끗희끗 눈들이 나무에 매달려 온통 회색빛을 내보인다. 완전한 순백색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마치 시어버린 머릿결 같은, 중간에 검은 머리가 약간씩 남아있는 중년의 머릿결 같은 산 기운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 느낌을 맛보고 싶어 이곳에 온 곳이다. 다시 입으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추스리며 차를 몰기 시작했다.      

성판악 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습

아직 제주도를 잘 모르지만 여전히 내 맘대로 예단하려는 못된 자세는 여전하다. 앞으로 성판악이 남았다. 갓길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한번 ‘야호!’라는 환호가 나온다. 성판악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야 한다.     


양쪽으로 눈발을 머금은 산이 더 이상 운전을 하지 말라고 한다. 바람이 너무나 거세 한 순간도 서있기 쉽지 않다. 거기에 가는 눈발이 내린다. 이 눈발이 내일과 그 다음날은 다시 온 산을 뒤덮으리라. 그러면 사람들은 한라산을 찾을 것이고...     


불과 5분여에 불과한 순간이지만 한라산 정상이 아닌 성판악에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 여리고 여린 자연감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바람에 휘날리는 몸을 견디기에 몹시 추운 순간들이다. 어제는 분명 20도까지 올라간 날씨였는데 지금 이곳은 영하의 날씨를 기록중이다. 무엇하나 오래 견디기 힘들만큼 바람의 제주도를 제대로 보여준다. 윈드시어로 비행기 결항이 오늘도 일어났다. 이 바람에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일정도 어쩌면 살인적이라는 말과 동등하다.     


다른 세상을 연기하는 서귀포의 구석에 발을 닿았다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잡았다. 더 이상 눈이 덮힌 산을 찾을 수 없다. 고개를 넘어 숲터널을 지났다. 숲으로 된 도로가 잎새가 가득하다면 터널이 될 터이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들로 터널대신 손을 내밀거나 궁금증을 일으키는 모습으로 길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 가지들만 나를 향해 인사한다. 곧 품에 안을 듯 모든 차량을 이곳에서 감탄케 하리라. 여전히 원시 숲의 이끼는 나무와 함께다.     


굽이굽이를 내려오다 ‘헉’소리를 내 질렀다. 아래쪽으로 바다와 섬이 보인다. 저 섬의 이름은? 섶섬이거나 다른 섬이거나 상관없이 바다와 섬은 이 장소에서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이다. 하늘이 다시 파란 기운을 띠며 구름을 흩뿌려놓았다.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언제 그렇게 찌푸둥하고 우울증을 주었느냐는 듯 새파랗지 않아도 다른 세상을 연기하는 서귀포의 구석에 발을 닿았다. 세이프. 스틸하는 느낌이다.     


지금부터는 제대로 된 내리막이다. 곳곳에 차들을 세우고 먼 경치를 굽어보는모습이 보인다. 나 역시 차를 세우고 싶지만 차의 속도를 줄이기에는 인생의 관성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갈길은 계속해서 가야하는 것이 인생인 것인가. 중간에 찻길은 산록도로로 접어 들었다 다시 바닷가를 향해 마을안을 지난다.      


하례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 한적한 마을의 속길은 겉으로 다니는 일주도로나 발빠른 도로와 달리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일으킨다. 속도를 내면 안된다. 이 길을 느끼고 싶다. 올레길은 아니어도 마을 속에 파고든 생활도로의 맛은 도로 옆에 붙은 가정집들과 연결되어 있어 감칠맛이 든다. 그 길 속에 파고든 삶의 애환과 애증들이 고스란히 묻어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에 더욱 더 시선을 붙잡는다.     


다시 바다로 향한다. 이제는 눈 앞으로 연한 옥빛의 바다가 저만큼 높이 보인다. 수평선이 높다. 이곳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뜻 바다가 나를 향해 쏟아지듯 높은 수평선과 그 사이를 가득채운 바닷물이 옥빛띠를 이룬다.     

갤러리 앞의 해안도로 

동해일주도로를 잠깐 지나면 마을로 들어선 길은 좁아진다. 여러번 와보아도 늘 헷갈리지만 정겨움만은 헷갈리지 않는다. 다리를 지나기 전에 우회전하면 된다. 그곳에는 막다른 길 앞에 커피숍을 열어놓은 자그맣고 이쁜 민박집이 눈앞에 있다. 이곳에 와있으면 다 온 것이다.     


여전히 외부의 관광객용 차량들이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녀도 이 길은 마냥 해안도로의 후미진 끝에 있음을 아는 듯 흘러가는 차량과 사람의 눈길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곳에 나의 목적지는 고즈넉이 자리해 있다. 갤러리이자 카페다.      


누군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이곳은 풍경을 찍는 곳이 아닌 마음을 촬영하며 자신을 내려놓은 곳이기도 하다.     


그 안에 나의 마음을 담아 덜썩 내부 전시공간의 안쪽을 열고 들어선다. 

꽃차를 만들기 위해 꽃바구니 들고 나선 쥔장

‘안녕하세요?’     


누군가 인사를 해주는 곳이 있는 이곳을 향해 나는 제주시부터 한 시간을 한 걸음으로 달려온다. 바다가 앞에 있어서기도 하고 조그마한 제주의 집이 있기도 하지만 그곳에 자신의 삶을 묻고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에 언제나 달려와도 부담없이 올 수 있는 곳이다. 그 인연을 잔잔하게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엮기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못된 성격조차 낯가림을 한 순간만 벗어나면 도대체 내가 거절해야 할 사람들의 조건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내가 편하자고 찾는 곳인데...      


바다를 바라보며 나무 벤치에 앉아 귤을 곰시락 곰시락 까먹는 이 기분은 이곳의 편함을 얻었기에 가능한 모습일 뿐이다.     


아직 바다를 보고 있지만 오늘은 해너미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님 무슨 상관이 있으랴. 위미에 왔으면 된 일이지.     


2016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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