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8일 가족과 함께 찾은 남쪽 바다
처음으로 가족이 제주에 내려온 첫날.
아내와 아이를 어디에 데려가 볼까 생각하다 그래도 가본 적이 있는 송악산 자락을 데려가기로 했다.
송악산 자체가 가진 특이함에 뒤로 보이는 산방산과 형제섬 그리고 너른 바다.
다시 반대편에 펼쳐진 추자도와 마라도가 나름 제주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 줄 것이라 믿었기에 렌터카를 끌고 고고씽...
녀석과 아내는 피곤한지 가는 내내 잠들어 있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제대로 보여주기나 할지 모르겠다.
주차장에 내려 송악산 걷기를 시작. 아들 녀석은 시작부터 투덜댄다. 온갖가지 짜증과 투덜거림이 몸에 배어있다.
사실 그 나이에 경치에 감동하거나 새로운 관광에 눈을 뜨기에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인생이라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예상대로 반응은 냉랭하다.
어떠냐는 물음에 그냥 그렇단다. 벌써부터 내려갈 생각만 한다.
"이걸 왜 데려왔나"
중2도 이제 방학이 되면서 끝이 났는데 어찌 새로운 모습을 보일 가능성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아내도 탁 트인 풍광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모습이다. 몸이 그다지 좋지도 않거니와 서울에서 너무 피곤한 시간들을 보내 탓인지 힘들어한다.
문제는 아들 녀석의 사진 찍기 거부 현상이다. 중학생 때는 늘 그렇듯이 자신에게 남이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구조차 귀찮고 간섭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귀찮다는 녀석을 협박과 읍소 그리고 온갖 아양을 떨어가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그것도 제대로 된 포즈 한번 취해주는 적이 없다.
이런 녀석 하고 아내는 매일같이 부딪힌다. 그나마 나는 아들에 대해 별다른 간섭을 한다거나 하지 않지만 엄마의 눈으로 보는 중2짜리의 생활은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다행히 녀석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그냥 좋은 경치를 구경하며 순응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어릴 적 태도가 나온다. 아직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남아있다. 특이하게 생긴 배경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달란다. 스코리아 토양이 쌓여있는 배경이 있어서 신기하단다.
아내는 화려한 모습의 바다 풍경보다 잔잔하고 단아한 느낌의 반대쪽 풍경이 훨씬 맘에 든다고 한다. 역시 아내의 성격 그대로 좋아하는 풍경도 똑같다. 모슬포 방향의 평평한 밭이 있는 밍밍한 풍경을 선호한다.
역시 3명이 좋아하는 느낌이 다르다. 성향의 차이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런 관광지에서 보이는 반응에서도 알 수 있다. 한 가족인데 성격도 비슷하고 혈액형도 일반적인 B형이라 취향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1시간여의 트레킹 아닌 산책 후에 아들은 풀밭이 있는 언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곳에 온 김에 하멜표류기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관광지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녀석이 하멜이라는 인물이 쓴 표류기가 한국을 유럽에 소개한 중요한 책자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데려갔다. 역시 대충대충 본다. 질문을 해가면서 녀석의 머리에 각인시켜보려 애쓴다. 아빠의 애쓰는 노력을 이 녀석은 알아줄 가나...
뽀로리(애 엄마의 별명)는 아들 녀석에게 제주에 오면 결코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제안을 했다. 클레이 사격을 시켜주겠다는 내용이다. 진짜 총을 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유랜드 사격장을 찾아서 발길을 그곳으로 돌렸다.
결과적으로 녀석이 쏘고 싶다고 해도 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녀석은 한사코 사격을 하기 싫단다. 그토록 게임에서 사격을 하면서 실제 총을 쏘게 해주겠다는 제안에 'NO'라고 답을 한다. 결국 그냥 나왔다.
순간 와이프의 분위기가 심드렁하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는가 싶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위미한 내일 학교 분교인 '마음빛 그리미'에 가서 차나 한잔 하고 가기로 결정했다.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냅다 달렸다. 가는 길에 이정표가 보인다. 외돌개. '그래 외돌개 정도면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30분 안에 무언가를 보여주고 가던 길을 갈 수 있다.'
순간적인 결정을 하고 외돌개로 차를 돌렸다. 오히려 잘됐다. 길지도 않고 외돌개라는 관광지가 사실 임팩트는 있지 않은가. 멀리서 한번 딱 보고 마는 멋진 바위 하나. 녀석도 이것이 싫지는 않았는지 별 불만이 없다. 다행히 지나가는 부부가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단다. 옳다구나 제대로 된 가족사진이 한 장 생겼다.
해 질 녘에 도착한 갤러리에서 한결 선생은 내가 오기를 한참을 기다렸다고 한다. 중간에 외돌개를 들려왔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이미 전화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 시간 넘게 중2짜리 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깜깜한 밤중이다.
이곳에 종종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곳에 머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픈 생각이 든다. 차분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루가 쉽게 간다. 그래도 반갑고 고맙다. 식구가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위안이 된다. 내 돌아갈 곳과 내가 같이할 사람들이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