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그 실체를 다시 보다
새벽에 실체를 파악한 빌바오의 거리를 아침에 다시 걷는다.
빛이 다를 뿐 다른 것이 뭐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사람들이 숨 쉬며 생상하게 되살아나는 도시를 그것도 아침에 걷는 기분은 새벽녘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이제는 일행과 함께 찬찬히 걷는다.
아침에 만난 사람들은 바쁘게 직장을 향해 가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이날이 휴일임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부지런한 셈이다. 많은 이들이 강가를 산책하는 모습에는 여유와 상쾌함이 함께 묻어 나온다. 강이 주민친화적으로 바뀐다는게 이런 의미일 것이다. 너무나 잔잔하고 고요하며 사람들이 강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이 도시의 중요 축이기도 한데 말이다.
새벽과 달리 가이드를 동행하고 나선 구겐하임 가는 길은 내가 마치 오랫동안 이 곳을 경험한 듯 괜히 한번 더 본 경우를 알리고 싶은지 우쭐한 기분마저 든다. 몇 시간 전에 그것도 어스름한 불빛에서 도시를 봤을 뿐인데...
소수민족이나 작은 지역의 여성들은 강인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역을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전 세계 어디나 공통의 모습이다
이렇게 이쁘고 아름다운 강과 강가가 한때 조선소들로 가득차 사람들이 접근조차 하기 힘들었던 장소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더구나 그같이 강한 조선소의 분위기를 도시 전체가 나서서 문화도시로 만드는 결단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바스크의 힘인가? 아니면 소수민족으로서 생존의 절박함이 그토록 강했던 것일까?
다리 밑의 이 여성들 그림 역시 유명한 그림이라고 하는데 빌바오 뿐 아니라 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바스크 여성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모습이란다. 대부분 짧은 머리를 하고는 강인하게 살아가는 여성이 바스크 여성들의 특징이라니 왠지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생각이 함께 떠오른다. 그동안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을 것인가. 여성들이 강인해지지 않았으면 안 되었을 순간들이 함께 반영된 모습인 듯싶다.
소수민족이나 작은 지역의 여성들은 강인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역을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전 세계 어디나 공통의 모습이다.
찬란한 빛을 받은 네르비온 강과 그 옆에 군함을 연상케 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위용을 드러냈다. 3만 3천 장의 티타늄판으로 이루어진 외관이 보이듯 그 판은 빛의 굴절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인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멋지다는 말과 함께 저것만을 보기 위해 이 왜진 스페인 북부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생각에 한 도시를 바꾸어 놓은 중요한 기념비를 목도하고 있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보면 볼 수록 기이하고 멋진 미술관이다. 저런 것이 미술관이라니 더 멋지지 않은가.
아침에 보는 퍼피는 새벽녘에 보는 퍼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사진들을 찍느라 여념이 없지만 나는 그다지 감동을 느끼기에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이를 알기라도 하듯 가이드는 정기적으로 퍼피의 외관을 꽃으로 바꿔어줘야 하는데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아 정갈하고 깨끗한 맛이 떨어진다는 설명을 해준다. 그러면 그렇지 유명세에 비해 아주 멋지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인가 이것이 강아지라는 생각보다는 곰돌이라는 생각이 먼저 뇌리에 박인다. 푸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
퍼피의 외관을 관리하는 비용만으로도 굉장한 비용이 들고 있다고 하니 이를 만들어낸 예술가의 예술혼은 칭찬할 만 하지만 관리자 측면에서 보면 애물단지가 될 듯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저곳의 외관을 둘러보는데 이미 한번 본 때문인지 신선한 충격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멋지다는 평가에서만은 옹색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여전히 구겐하임은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길 만한 충분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빛을 받든 어둠 속에서든 그 웅장한 위용만이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 기능만으로도 건축물이 주는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빛을 받든 어둠 속에서든 그 웅장한 위용만이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 기능만으로도 건축물이 주는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겉에만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업다. 입구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여기가 입구인가 싶을 정도로 다소 옹색한 면이 있지만 어쩌면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가 이것이 아닐까. 동양의 건물들은 어디서나 입구를 웅장하게 만드는데 익숙하지 않던가.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와 매표소를 보면서 그 유명세를 생각한다면 동양에서는 어떤 입구를 만들었을까 상상해본다. 최소한 이렇게 실용적이고 소담스럽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시물은 어떠한지 궁금하기 그지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