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경험은 참 중요하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 커다란 난관도 극복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는 구력이 생긴다.
시위나 집회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모두를 깜짝 놀래 킨 촛불집회와 이를 세 대결로 끌고 가고픈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성공의 경험이 사람들을 참 많이 바꾸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년 전 탄핵을 통해 촛불집회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중대한 승리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촛불을 들어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서초동의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나지 않던가. 성공의 경험이 반영된 자신감이.
반대로 탄핵이후 보수의 입장을 잠시 생각해보면 자괴감에 휩쌓였으리란 추측을 해본다. 보수의 집회는 관제데모가 주를 이루었듯 시위를 통해 무언가를 획득한다거나 요구를 관철시켜본 경험을 거의 갖지 못했다. 사회의 병폐라 여겼던 좌익에 의해 탄핵과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목도하면서 그들은 광장의 힘을 알게 됐고 시위와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광장정치를 방법론으로 택했다. 처음에는 노인네들의 태극기 부대나 일당에 이끌려온 찌질한 집단으로 치부되었지만 개천절의 집회는 어쩌면 나름 자신감의 회복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소위 시위의 기술을 습득해나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천절의 광화문집회를 통해 태극기집회, 지역 동원, 개신교 집회 등 입장은 달랐지만 세과시의 일차목표는 달성된 듯 보였다. 조금만 더 하면 꽤나 잘 할 수 도 있겠다는 기대감까지 갖게 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헌금강요나 성조기, 일당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어이없어 보이지만 보수 역시 본인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광화문에 가득한 인원을 보았으니 얼마나 감개무량 했을런가. 이 같은 집회를 계속하면 장관을 사퇴시키고 대통령도 탄핵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보며 그 숫자에 놀라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음이 느껴진다. 우선 검찰개혁이 국민의 의견을 찬반으로 갈라 놓아야 할 만한 문제였던가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게 밀고 갔어야 할 문제인 것이 아닌가. 시기적으로 총선을 코앞에 두고 검찰개혁이 진영싸움의 이슈가 되는 모양이 불편하다.
검찰개혁이라는 목표가 조국장관의 퇴진과 문재인정부의 실정주장과 연결되면서 진영논리 중 어느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느냐는 선택국면이 되고 말았다.
검찰개혁을 정권초기부터 좀 더 세게 밀어 부치지 못한 결과 때문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머문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검찰과 대결하는 국면은 솔직히 ‘모냥’ 빠진다. 보수에게 시위의 기술을 트레이닝 시키는 상황과 진영싸움으로 몰고 가는 빌미를 준 것 역시 탐탁지 않다.
야당의 입장에서 보면 호기를 잡은 셈이다. 6개월 남은 총선을 앞두고 총선정국으로 국면 전환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통산 3개월이나 100일전부터 뜨거워지는 총선이 장외집회의 기술 덕에 6개월로 늘어난 것이리라.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불리할 듯 보였던 정국을 뒤엎을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검찰개혁과 진영대립이라는 광장정치는 이미 강을 건넜고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격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개혁이 국민들의 선택의 대상이 된 정치지형이 그래서 더 아쉽기만 하다. 검찰개혁이 광장정치의 메인 이슈가 된 이상 결과를 만들기는 하겠지만 당연한 과정이 선택사항이 되어버린 정국으로 인해 거대한 촛불집회에 대한 탄성과 동시에 못내 불편한 마음은 여전히 남는다. 검찰개혁은 당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재 근/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제주일보> 2019년 10월 9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