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러티의 영향력 실감 ... 제주에 대한 무게감도 필요
1500여 명이 넘는 숫자가 매월 제주에 입주한다. 최근의 이주 붐에는 초기의 '셀러브러티 Celebrity(유명인사)'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주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현상을 한 두 가지 원인으로 분석하는 일이 난망하긴 하지만 이들 유명인사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TV에서 앞다투어 이들의 제주 생활을 소개하고 일종의 붐까지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 붐 혹은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셀러브러티는 좋으나 싫으나 그 이름값으로 울고 웃는다. 사소한 일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별것 아닌 일로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거리가 되어 파파라치의 사냥감이 되기도 한다.
유명인사가 된다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그로 인한 이름값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셀러브러티에게 사회 지도층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모르겠으나 약간의 솔선수범은 손가락질 대신 찬양을 받기 쉽다. 자발적인 권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뭔 말이 이리 장황하냐 하면 우리 사회가 그 같이 당연한 관계나 희망사항으로부터 늘 동떨어져 있는 현실이 더 많기 때문에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얼마 전 SNS에 소길댁으로 잘 알려진 가수 이효리가 구좌읍 평대리의 한 채식 식당에 일일 셰프를 자처한 이야기가 살짝 올라왔다. 이효리·이상순 부부는 '고기 없는 점심'을 주제로 채식 식당에 일일 셰프로 참여했다. 수익금은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해 쓰인다고 알려졌다.
잊힐만하면 심심치 않게 뉴스를 만드는 재주를 지닌 연예인이다. 제주에 내려와 사는 것도 뉴스가 됐거니와 화려함을 덮고 택한 수수한 생활 역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스스로 농사를 지은 콩을 유기농 콩이라고 무심코 적어 판매하는 등 사소한 일들로 곤욕을 치르며 뉴스가 되는 셀러브러티다.
그녀 덕에 애월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였고 그녀가 스스로 만든 물건을 직접 내다 팔며 지역 벼룩시장 역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정도를 떠나 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에 일조를 한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별거 아닌 일들이 계속해서 뉴스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녀가 택한 제주에서의 삶 때문이리라. 특히 외부와의 동떨어진 유명인사의 이질감보다는 제주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 비록 제한적이지만 제주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제주 이주민의 생활을 공유하는 모습이 제주 선택의 한 길로 평가받는 듯하다. 그녀가 가끔 비치는 이런 모습이 공교롭게도 밉지는 않아 보인다.
몇 주 전 이미 애월 한담 해안의 명소가 된 ‘몽상 드 애월’을 다녀왔다.
많이 알려진 봄날 카페의 유명세를 뚫고 사람들은 이 ‘몽상 드 애월’을 더 즐겨 찾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GD 카페’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유명 힙합그룹 빅뱅의 ‘지드래곤(GD)’이 20여 억 원을 투자해 오픈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내비를 찍어가며 렌터카를 몰고 온다. GD가 사장인지 아닌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수많은 방문객들은 애월 한담의 황량한 바닷가에 자리 잡은 카페를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담는다.
인증샷은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증거물이다. '나 GD카페에 다녀왔어'라고 마음속 깊은 ‘자랑’을 할 수 있다.
'GD카페'라는 연예인의 이름 하나에 생뚱맞은 카페 하나가 1년도 채 안 돼 명소가 됐다. 유명 연예인이 갖는 힘을 다시 한 번 절감케 한다. 이제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또 다른 권력의 한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제주 바닷가의 너른 땅을 구입해서 댓돌로 입구를 2군데 놓았고 해안도로와 연결하는 길을 냈다. 변변한 주차장도 마련하지 않았다. 주변에는 흙을 그대로 놔두고 아무런 인테리어도 없이 바람의 황량함을 그대로 받아주는 곳에 카페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것이 콘셉일 수도 있고 상업적인 노림수 일 수도 있지만 유명세 하나만은 날로 힘을 더해간다.
제주를 좋아하고 접근하는 방법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나 유명인이 제주를 선택하는 방법은 영향력의 크기로 인해 신경이 쓰인다.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제주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유명세를 활용해 돈을 버는 일을 말릴 수는 없지만 그것이 자신이 늘 좋아한다고 자주 다녀가는 제주를 사랑하고 아끼는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굳이 GD로 하여금 이효리와 같이 제주를 접근하라고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지금처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직접 자금을 투자했던지, 아니면 이름만 사용하게 했던지 카페 하나를 짓고 돈을 벌고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접근 말고 제주를 좋아하는 만큼 제주에 내재된 가치가 더 의미 있게 발현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제주를 사랑하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무지몽매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얼마 전 미국 영화계의 대표 행사인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밝힌 수상 소감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영화를 찍을 때 눈을 찾기 위해 남극 가까이로 가야 했습니다. 기후변화는 현실입니다.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위험입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촬영하면서 겪었던 지구온난화의 현실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소감문 발표 현장에서 리얼하게 이야기하며 모두가 기후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였다. 셀러브러티가 가지는 힘의 의미를 알려주는 순간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제주를 위해 국내의 셀러브러티들 역시 제주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접근하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던져진 무게감을 함께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제주가 오래 가고 자신들도 오래 간다. [이재근=제이누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