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k Sep 23. 2021

무조건 글쓰기 #7

소설가 정세랑의 여행기를 읽다가 새삼 여행하는 삶에 대한 욕망이 들끓어올랐다. '들끓어올랐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강도였다. 대체로 이런 욕망이 들끓어오르는 시기는 먹고 사는 일에 지쳤을 때다.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와 혐오를 느꼈을 때 여행하는 마음으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여행하는 마음으로 봉사라니, 다소 불경스럽게 들리지만 사실이다.


정세랑의 여행은 한 달짜리도 있었고 일주일 남짓한 것도 있었다. 긴 체류기가 제일 잘 읽혔고 재밌었다.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았던 여행은 적어도 내게는 불필요해보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욕망하는 여행이 긴 여행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 경제력은 내가 원하는 기간만큼만 일할 수 있는 직업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돈 많이 버는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돈을 아주 조금 버는 프리랜서도 못 될 깜냥이다. 조금 다른 의미로 예전엔 2년짜리 계약직을 전전하며 적게 쓰고 모아서 여행 가고 또 다시 계약직으로 일하는 삶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중고신인에게 취업시장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걸 깨달은 뒤로 꿈도 꾸지 않는다. 


욕망과 현실이 서로 등을 보인채 쏜살같이 달려나갈 때 나는 현실의 괴로움을 다시 한 번 체감한다. 그러다 욕망은 사그라들고 잠잠해진다. 또다시 들끓어오르기 전까지는 잠잠할 것이다.


사실 너무 식상하고 황당무계해서 꺼내기 힘든 진짜 욕망은 따로 있다. 여행하며 글쓰고 먹고 사는 일이다. 이 문장을 끝끝내 마음 속에 담아두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라도 나는 작가로서 가망이 없다. End of Conversation. 끝. 마침. Fin. 흥.

작가의 이전글 무조건 글쓰기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