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의 회사원

연재를 시작하며 - '나'라는 회사원은 왜 영화 리뷰를 쓰려고 하나

by 임재훈 NOWer
애초에 재채기가 있었다. 토머스 에디슨이 프레드 오트의 재채기 장면을 촬영함으로써 산업이 시작되었다.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재미나게 생긴 사나이가 재채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움직이는 그림을 1분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키네토스코프(Kinetoscop) 전시실에 몰려들었다. 그곳에는 재채기 외에도 힘이 장사인 샌도우, 훈련을 받은 곰의 재주, 이빨 뽑기, 그리고 푸에르토 리코의 소녀들이 엉클 샘의 군인들을 즐겁게 해주는 등등의 내용이 있었다.

영화 전문 바이오그래퍼, 밥 토마스(Bob Thomas)


아, 잠깐만요. 그러니까, 미국 최초의 영상(motion picture) 저작물, 즉 관람료를 지불하고 봤던 첫 상영작이 어떤 남자의 재채기 '직캠'이었다고요? 죄송합니다. '캠'은 아니겠군요. 에디슨이 발명한 활동사진 영사기(키네토스코프)로 촬영된 필름이었을 테니까요. 재주 부리는 곰, 발치 푸티지,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위한 소녀들의 장기자랑 등등도 그 시절(19세기말)엔 영화 산업으로 분류됐었다는 이야기죠? 마음에 쏙 드는 걸요? 저도 사무실에서 재채기는 제법 하는 편이고요, 회식 때나 야유회 때 선보일 개인기 하나쯤은 비축해두고 있거든요. 만약 제가 에디슨 시대에 살았으면 충분히 '주연'이 됐을 거예요!




영화 산업과는 전혀 무관한 업종의 사무직입니다만, 제게 영화는 회사 생활의 지속성을 연장시켜주는 일종의 '라이프 세이버'입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소심한 저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단숨에 빨간 약을 삼키지는 못 할 것 같아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브루스 웨인이 그랬듯, 안전 로프를 훌훌 풀어 던진 채 맨몸으로 벽을 탈 자신도 없고요. 빨간 약을 복용하기엔 아직 파란 약의 세계에서 마무리 못 지은 업무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월급이라든지, 따박따박 모아놓은 목돈 등속의 '안전띠'를 벗어버리기란 식구들 앞에서 차마 감행하기 곤란한 일입니다. 이렇듯 트릿한 개인이 돼놓은지라, 출퇴근길에는 어김없이 상념에 젖곤 합니다.(근무 시간에는 오히려 머릿속이 말끔한 편입니다.) 사춘기 아이 같은 고민이라 쑥스러운데, 실은 날마다 '내 인생에서 주연이 못 되면 어쩌지' 하며 조마조마해 한답니다.


<벤허>와 <십계> 등의 대배우 찰튼 헤스턴을 아버지는 열렬히 좋아 하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 보기를 무척 즐기셨던 분이기도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유년기부터 영화라는 것과 친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삼십 대 회사원이 된 지금도 영화와의 친밀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영화라는 여성(제멋대로 결정한 성별입니다.)과 대단히 긴밀해진 기분입니다. 한 편의 영화는, '내'가 감상하기 이전과 이후로 양분될 수 있습니다. 두 상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관객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관객을 보는 것, 혹은 통과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터스텔라>의 인듀런스(endurance) 호가 웜홀을 통해 항성 간 이동을 하듯, 영화 또한 '나'라는 지평을 넘나들며 전적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지요. 이런 현상의 징후는―또다시 쑥스러운 고백입니다만 '나는 명백히 내 인생의 주연이다'라는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영화 한 편을 감상함으로써, 영화 한 편이 나를 거쳐감으로써, 나의 일상에 새 행성이 하나씩 발견되는 느낌이랄까요. 1894년 <에디슨 키네토스코프의 재채기 기록(Edison Kinetoscopic Record of a Sneeze)>을 접한 관객들 역시 저마다의 소우주를 경험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재채기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도 '영화적 스코프(cinematic scope ; 제가 만든 조악한 용어입니다.)'를 통해서라면 특별해질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 그것만큼 우주적인 황홀감이 또 어디 있을까요.


영화의 역사나 사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도해볼 엄두도 나지 않고요. 겁도 많은 편이고 원체 똑부러지지 못한 타입이라 지성적인 문장가도 못 됩니다. 다만, 일개 회사원으로서 영화 한 편을 보며 품었던 생각과 고민 들을 정리할 정도의 어휘력은 겨우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리뷰를 쓰는 이유는, 영화를 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회사에 다니고, 다달이 얼마의 급여를 받고 일정량의 보험료를 납입하고, 부지런히 저축하다가는 별안간 충동적으로 과소비도 하고, 그러다가는 다시 아껴 메우고, 평일 이십사 시간은 출근 후와 퇴근 후로 이원화된 지 오래이고, 근성이나 야망의 결핍으로 주말 샐러던트는 아무래도 될 수 없겠는, 이런 '원 오브 뎀'의 회사원일지라도, 어찌 됐든 자기 인생의 주연이라는 리얼리티만큼은 불변의 플롯임을 반복적으로 확신하기 위함이지요. 결국, 잘 살아내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것이겠지요.


매거진의 제목을 '영화관의 회사원'으로 지었습니다. 좀 뜨끔하기는 합니다. 영화관보다는 집(방)에서 영화를 보는 횟수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시답잖은 변명을 하자면, 최고의 영화관은 역시 불 꺼놓고 혼자 팝콘이며 라면이며 맥주며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방 안이 아닐까요. 역시 이 말은 안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실은 <영화관의 외교관>이라는 제목의 책을 좋아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의 제목을 좋아합니다. 외교관인 저자가 영화에 대해 쓴 책입니다. 영화관 안에 앉아 있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묘한 설렘이 일었습니다. 기나긴 광고가 다 끝나고, 극장 조명이 완전히 꺼질 때의 그 송연한 짜릿함 말입니다. '외교관' 대신 '회사원'을 집어넣어도 제목 자체가 발산하는 묘미는 그대로이리라 예측했습니다. 그대로이길 바랍니다.


그간 혼자 아카이빙 해놓거나 기고했던 글, 그리고 새로 쓴 글들을 편편 모아 '영화관의 회사원'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회사원 독자 여러분, 굳이 회사원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즐기는 모든 분들께 꾸준히 읽을 거리를 제공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임재훈

- '나우어(NOWer,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라는 필명으로 영화 리뷰를 씁니다

- 예술 관련 잡지 기자였다가 인터넷신문 기자였다가 소셜마케팅 대행사 팀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중소기업 홍보팀에서 근무합니다

- 각종 기업 블로그, 잡지, 웹진 등에 글을 쓰며 원고료를 받아 저금하거나 (대부분) 소비합니다

- 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달 출판사)

- 운영 블로그

<회사원 나우어의 영화 리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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