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은 '소호강호'를 부를 수 있을까

<동방불패>

by 임재훈 NOWer

영화가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순간 중 하나는 관객이 성장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객의 나이에 따라, 지금 처한 환경에 따라 오래전 봤던 영화가 전혀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그때는 느끼지 못한 감흥이 지금에 와서야 뒤늦게 도착하기도 하니까요. <동방불패>를 처음 봤을 때가 아마도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듯합니다. 홍콩 영화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시기라, 어린 저는 ‘와, 정말 대단하다!’ 감탄하며 봤었습니다. 임청하, 관지림, 이가흔 세 배우들의 미모에 넋을 잃었던 철부지이기도 했죠.

시간이 좀 흘러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소룡, 성룡, 이연걸, 견자단 등 액션스타들에 한창 빠져 있었습니다. 이소룡은 왠지 범접하기에 만만찮은 배우라 팬심보다는 존경심이 더 컸습니다. 사진이나 VHS, DVD를 감히(?) 모을 생각을 안 했었죠. 그보다는 좀 더 친근한 성룡과 이연걸과 견자단의 출연작들을 챙겨 보고 팬클럽 카페에도 가입하고 정모에 나가보기도 했습니다. 팬심을 한껏 발휘했었죠. 셋 중에서 이연걸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90년대였는지 2000년대 초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무렵 어느 매체에 실린 이연걸 관련 기사에서 “척 보면 소년인데 자꾸 보면 사나이”라는 문장을 읽고 대단히 공감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연걸 스스로도 자신은 여성들 앞에서 매우 숫기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죠. 내성적이었으나 내면 깊이 액션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었던 저는 이연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 서적과 역사책을 즐겨 읽는다는 그의 견실한 지성미에 반하기도 했고요.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반드시 이연걸 같은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는 공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이연걸을 마음에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고등학생 때 그의 대표작인 <동방불패>를 다시 봤죠. 삼십대 이연걸은 특유의 날렵한 몸놀림과 기예에 가까운 몸짓, 동글동글한 이목구비로 빚어내는 다양한 표정, 그러다가도 어느 틈엔가 발현하는 영웅다운 비장미로 십대인 저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 <리셀웨폰 4>를 기점으로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혀간 이연걸은, 홍콩 시절의 소년스러움보다는 다소 잔학하고 무자비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동방불패>에서의 경쾌함이나 <황비홍>에서의 어른스러움, <모험왕>에서의 당찬 기백 같은 예의 매력들은 (아마도 할리우드 제작자들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그 작은 체구로(이연걸의 신장은 170cm가 채 못 됩니다) 서양의 키 크고 덩치 좋은 상대 배우들과 의젓하게 자기 배역을 소화해내는 모습은 참 근사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힘을 얻고는 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저에게 이연걸은 여전히 둘도 없는 훌륭한 내적 스승이자 영웅이었습니다. <키스 오브 드래곤> DVD 스페셜 피처에서 이연걸은 자신의 인생 철학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요지였죠. 이런 철학은 <무인 곽원갑> 관련 인터뷰에서도 이어집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모든 인간은 특별합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그 능력이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늘 다른 사람들만 쫓아가다 보면 당신은 언제나 '쫓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으세요. 여러분은 The One 입니다."
"Every human being is unique. You have your own special ability. You need to prove that becomes unique. What can you do better than the others? If you always follow someone, there you'll always be a follower. Believe in yourself. You are The One."


“여러분은 The One입니다.”라는 이연걸의 제언을 참 많이도 공책에 써보며 힘을 내던 이십대였습니다. 군대에 가고 전역하여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여러 번의 이직과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이연걸을 늘 생각했습니다. 내 어린 날의 상징이자 순수의 표상으로서의 이연걸을 저는 내내 사랑했죠. 어느덧 서른이 넘은 회사원은 짜증이 늘고 군대에서도 안 피우던 담배를 시작하고 퇴근 후에 술 한 잔씩을 해야 잠이 드는 속인이 되고 말았지만, 매일 밤 잠들기 전 어두운 침대에서 스마트폰으로 이연걸의 사진을 보다가 잠이 듭니다. 업무 스트레스가 격해지면서는 내 안의 이연걸이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어 도무지 슬픔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 영화가 <동방불패>입니다.


동방불패 04.jpg ⓒ daum movie


이연걸이 연기한 주인공 영호충은 강호를 떠나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내입니다. 좋은 술과 음악을 즐길 줄 알고, 미인들의 흠모의 대상이기도 한 호남입니다.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은 그가 지닌 최고의 내공이죠. 그러나 그런 영호충도 끝내 풀어내지 못한 위기가 있으니, 그게 바로 강호입니다. 강호를 떠나려 할수록, 그는 강호의 사사로움에 얽혀버리고 맙니다. 자신의 의지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들이 한데 뒤엉켜 영호충은 더욱 단단히 강호에 속박되죠. 결정적인 사건은 동방불패와의 만남입니다. 본래 남자였던 동방불패는, 모든 영웅들이 탐내지만 절대 아무나 터득할 수 없다는 최고 경지의 무술 ‘규화보전’을 익히는 동안 여자가 된 인물입니다. 절세의 무공과 함께 동방불패는 강호를 들썩이게 할 만한 위세와 명예까지 얻었습니다. 규화보전 통달을 위해 남자에서 여자로 변했다는 극적 설정은, 세속의 명예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는 의미이겠죠. 이런 동방불패를 영호충은 연모하게 된 겁니다. 동방불패 또한 영호충을 마음에 두게 되죠. 영호충은 동방불패가 자신의 사제들을 처참히 살해한 천하의 악인임을 깨닫고 복수를 다짐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습니다. 복수라는 것이, 그리고 강호의 일이라는 것이 결코 순순하지 않다는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협영화 <동방불패>의 스토리라인은 퍽 입체적입니다.


동방불패 03.jpg ⓒ daum movie


서른이 넘어 다시 보니, <동방불패>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처럼 다가왔습니다. 강호를 벗어나고자 하나, 속절없이 또 강호의 일에 휘말리는 영호충을 보며 지금의 내 위치를 생각해봤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싶지만, 퇴사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죠. 먹고사는 일이 바로 강호의 일입니다. 부정할 수가 없죠. 높은 연봉, 좋은 물건들 따위에 집착하는 제 모습은 동방불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동방불패를, 서른이 넘은 이제는, 쉽사리 ‘악당’이라 칭할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동방불패는 우좌지간 각고의 노력으로 천하제일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남자에서 여자가 됐다는 건, ‘나’를 완전히 바꾸었다는 비유로도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 아니던가요. 동방불패는 그걸 이루어낸 인물입니다. 그런 동방불패가 영호충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던 자가, 강호를 떠나기 위해 다 내려놓으려는 풍류객 영호충을 흠모한다니요. 동방불패는 동방불패이면서 동방불패가 아니기도 한 것일까요. 천하제일이면서 천하제일이 아니기도 한, 이것을 이것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세속인들의 사정을 동방불패는 저에게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 그런가 하면, 동방불패가 악인임을 알고 난 뒤에도 단호하게 칼을 쓰지 못했던 영호충의 사정은 무엇인가요. 왜 동방불패의 급소를 찌르지 않고 칼을 거두었냐고 원망하는 사제에게 영호충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오히려 부상 당해 절벽으로 낙하하는 동방불패를 끌어안기까지 하죠. 끝내 동방불패를 내려놓지 못하는 영호충과 달리, 동방불패 본인은 담담합니다. 규화보전을 통달한, 남자에서 여자로 변한 제 한 몸을 오롯이 추락하도록 놓아둡니다. 구차한 변명이나 뒤늦은 뉘우침, 살려달라는 애원도 없습니다. 동방불패는 영호충을 밀치며 저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죠. 목표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최후에 다다랐을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추락하는 동방불패의 처연한 미소가 서른 넘은 회사원을 기어이 울리고야 말았습니다.




업무 스트레스에 고전하는 나 자신을 생각해봅니다. 막상 강호(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강호에서 보장되었던 많은 것들(이를테면 4대보험, 다달이 나오는 수입, 사회적인 시선 등)이 저 아득한 절벽 아래로 순순히 추락하고 죽어 없어지는 걸 나는 지켜볼 수 있을까. 동방불패처럼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에서, 영호충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어딘가로 떠납니다. 또 다른 강호로 말이죠. 강호를 벗어나려 한 자는 강호에 남아 있고, 강호를 호령하고자 했던 자는 이제 사라지고 없는 애잔함. 엔딩에 울려 퍼지던 '소오강호'가 제 마음속을 내내 떠돌고 있습니다. 과연 영호충은, 그리고 회사원은 소오강호를 부를 수 있을까요. 강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소오강호를 부를 수 있으려나요.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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