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빽가 강연
좋아하고 잘하는 게 이것저것 많은 다재다능한 사람이 좋을까? 좋아하고 잘하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 좋을까?
가끔 보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그룹 코요태의 래퍼이자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빽가가 연사로 나왔다. 강연을 시작하며 그는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지 않아서 좋아하고 잘하는 걸 오래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어린 시절 여러 집이 하나의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다고 한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집에 있던 카메라로 친구들을 찍어주고 사람들이 자신이 찍어준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걸 보며 그는 사진가의 꿈을 키운다.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도 했다. 하지만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내년에 가면 안 되겠냐’는 어머니의 말에 괜찮다고는 했지만 꿈을 위해 노력한 지난 시절을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돈 때문에 원하는 걸 하지 못하게 되자 ‘이건 해서 뭐 해?라는 생각과 사진은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라 생각하고 아끼던 카메라도 팔고 사진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가 시작한 것은 춤. 이태원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춤을 좋아했다고 한다.
JYP라는 회사가 막 생기면서 비, 박지윤, 박진영의 안무팀을 하게 되면서 댄서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그룹 코요태의 객원 래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한 앨범만 참여하기로 하고 시작했지만 코요태가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되면서 정식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댄서로, 래퍼로 인기도 얻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사진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이 가슴속 어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코요태의 정식 멤버가 되면서 받게 된 계약금의 일부로 그는 사진가의 꿈을 포기하고 다 팔아버렸던 옛날 카메라를 다시 산다. 당시는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빽가는 자신의 이름을 딴 by100이라는 이름(그의 본명은 백성현이다)으로 싸이월드에 자신이 찍은 사진과 간단한 글을 꾸준하게 올렸다고 한다. 그 사진이 보그 잡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엘르, 코즈모폴리턴 등 여러 매거진과 일을 하게 되고, 타블로의 앨범을 시작으로 에픽하이, 자우림, 비, 김태우 등 여러 가수의 앨범작업에도 참여하며 포토그래퍼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뇌종양으로 큰 수술을 하기도 하고, 여러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지금도 그는 여전히 춤을 추고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지 않아서 좋아하고 잘하는 걸 오래 한 사람입니다.
저 지금도 사진 찍고 있고, 지금도 춤추고 있어요.
이것저것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은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마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 최고의 실력을 갖추게 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관심 있는 것도 별로 없는 데 그마저도 실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 못해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필코 이걸 끝까지 파고들어야겠다 시도하고 노력해 본 적은 없다. 하다 안 되면 포기하기도 하고, 다른 걸 시도하다가도 미련을 놓지 못하고 이쪽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내 노력과 관심은 일관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못했다.
놓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 힘의 바탕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잘하고 싶은 일을 정말 잘하고 싶은 순수한 열정과 마음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