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난, 읽고 쓰는 일이 제격은 아닌 듯하다. 활자를 가까이 두고 지내는 삶보다 맛난 거 먹고 예쁜 꽃이나 풍경을 보는 재미, 솔솔 옷깃을 파고드는 봄바람을 즐기는 낙이 더 크다. 그러니 스승님이 내게 지어준 천상 글쟁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듯하였다. 훌훌 벗어던지니 이렇게 홀가분하니 편한 것을.
아무래도 난, 천상 주부다. 새벽 두 시를 지날 때까지 봄나물을 다듬고 무치며 반찬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가죽나물도 벌써 다섯 번째쯤 된다. 한두 번은 엄마 솜씨가 그립고 봄맛을 제대로 즐기려고 시작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구순을 훌쩍 넘어선 시모님 입맛도 챙기려는 마음이었다. 옛맛을 되살리며 기운을 차리시면 며느리 또한 걱정거리 하나는 덜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마음과 행보를 살펴보면, 나는 천상 주부가 맞다.
아무래도 난, 문장 속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아이들 눈 속에서, 터지는 웃음에서 챙기는 재미와 보람이 더 크다. 그러니 책속 심오한 세계로 빠져들지 못하고 아이들 마음속으로 빨려든다. 점점 맑아지는 눈빛과 활짝 피어나는 낯빛과 순간순간, 하루하루 나아지는 그들의 모습에 행복감은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른다. 이렇듯 활자로 지은 문장 세계보다 현실 세상을 더 즐기니, 글쟁이로 나아갈 기미는 점점 옅어지고 멀어지는 요즘이다.
아무래도 난, 전도사인가 보다. 머리가 굵은 아이나 어린 꼬마들이나 수십, 수백의 눈동자를 마주 하면서도 한결같이 늘 느끼는 건, 따듯한 시선에 목말라 하는 그들의 표정이다. 눈빛으로, 언어로, 몸짓으로, 대화로 다독이고 어루만질 때 분홍빛 봄기운으로 파문이 이는 낯빛을 읽는다. 작은 관심과 접촉이 동심원을 그리며 번질 때 가슴벅차 오르며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나를 알아차린다. 그러니 아무래도 나는 사랑 전도사가 아닐까?
요즘은 요렇게 착각과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건너는 중이다. 아무래도 책쓰기는 오뉴월 뙤약볕 아래 엿가락 늘어지듯이 쭉쭉 늘어지고 허물허물 녹아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