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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Aug 07. 2022

250Kg의 환자분이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더 무거웠던 것은 아주머니의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당직이 끝나기 20분 전,  

선생님, 잠깐만요. 이 분만 좀...


이라는 말과 함께 만나게 된 환자분은 거구의 여자분이셨다. 주소( Chief Complaint. 응급실을 방문한 이유)가 6주간의 변비 및 오른 다리 통증이라길래 변비가 6주일이라는 게 말이 돼? 하면서 속으로 아무리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인턴이라지만 말이야 빵구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을 딱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순식간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 분은 족히 250 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분으로 혼자서 거동이 불편한 분이셨다. 길버트 그레이프의 엄마처럼.


  살짝 흔들린 내 눈빛을 설마 눈치채셨을까. 얼른 표정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우리 레지던트 닥터 N이 오늘 어떻게 오셨는지 대략적으로 이미 전해줬는데 제가 환자분한테 직접 듣고 싶어서 다시 한번만 더 여쭈어 보려고요...


 

     오른쪽 다리가 너무 아프시단다. 응급의학과 의사를 10 넘게 하면 보통은  보면 이게 어야  농양인지 아닌지 금방 구분이 가는데  분은 지방층이 너무 두꺼워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셀룰라이트의 물결을 살살 겉어가며 자세히 살펴보니 피부가 가죽처럼 변한 부분을 중심으로 욕창이  군데 생겼는데  부분이 유독 뼈가 드러나면서 역한 냄새가 났다. 언제부터 이러셨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이렇게 사는  너무 우울해서 죽으려고 식음을 전폐했는데 결국  죽고 병원에 실려 가셨단다. 그때부터 오른 다리를  쓰게 되었는데 집에서 계속 있다 보니 냄새도 나고 이러다가는    같아서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오셨다고 했다. 문제의 변비 역시 6 전에 변비약 먹고 변을 보신  계속 화장실을  가고 있다고 하셨다.   정도의 몸집이면 혼자서 거동은  하고 집에서 맨날 앉아서 생활하실 텐데, 그러면 6주간 변을  보신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평소에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서 여쭈어 봤더니 20대의 따님과 함께 산다고 하셨다.

 


    순간 아주머니의 그 공허한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그분이 오늘 여기까지 오시기에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 정말 잘 오셨다고, 여기까지 오시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결단하고 와 주셔서 정말 기쁘다고, 최선을 다 해서 돌볼 테니 걱정 말고 마음 놓으시라고 말씀드리고 문을 나섰다.






     인생을 살다 보면 흑암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누워서 가느다랗게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가 지나가는. 그 혼자뿐인 것만 같은 지독히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손에 잡은 것들 다 놔 버리고 그대로 그 어둠 속으로 침잠해버리고만 싶은 나날들. 그렇게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다 보면 그 어둠도 익숙해지고, 그렇게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암흑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서서히 그 삶에 적응해 간다. 세상과 떨어져 나만의 그 어둠과 혼연일체가 되어 내가 있는 이곳이 흑암 속이라는 것도 잊은 채.

 

      큰 마음을 먹고 병원을 찾아주신 아주머니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혼자서는 걸음조차 떼기 힘든 비대한 몸과 암울한 현실을 매 순간 마주쳐야 할 것이고 인생은 호락호락하게 아주머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의 이 결단의 발걸음이 되어 아주머니 삶에 짙게 내린 흑암을 조금씩 밀어내며 다시금 아주머니가 빛의 세상에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가만히 기도해 본다.   

 



*사진은 길버트 그레이프(1993, What’s eating Gilbert Grape).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풋풋한 시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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