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뉴욕의사의 포스트(?) 팬데믹 볼리비아 이야기
지난여름, 아이슬란드에서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피오르드를 탐험하고 있던 어느 날,
옛 은사님께 뜬금없이 날아온 문자 한 통.
" 너 볼리비아 갈래? "
나의 은사님은 국제개발협력사업을 많이 하시는 분으로 이번에는 볼리비아 병원의 응급의료체계 구축 및 심폐소생술 교육 자문을 맡아 일하고 계시는 중이셨다. 나는 예전에도 은사님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쉽지는 않지만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잠시 망설이다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는 볼리비아 의료진들에게 소아전문 응급구조술을 가르치는 전문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볼리비아는 우리에겐 우유니 사막으로 알려진 나라이다. 사실 그 외에 볼리비아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는데 출발하기 직전까지 일하랴 프로젝트에서 내 역할 준비하랴 바빠서 딱히 더 알아보지는 못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직항이 없어서 뉴욕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가는데만 꼬박 만 하루가 걸렸던 볼리비아로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 떠난 지 꼭 24시간이 지나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 라 파즈의 엘 알토 El Alto 국제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이민국을 통과하기 위해 좀 걷는데 갑자기 가슴이 뛰는 것 같고 숨이 가빠져서 아, 나 많이 피곤한가...? 하며 발걸음을 조금 늦추었다. 도착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만 고압적인 다른 나라의 이민국 직원들과는 달리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려 하는 마음들과, 준비해야 할 서류를 휴대폰을 가져와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살짝 이색적이지만 실용적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느긋이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다 내 앞에서 같이 도착 비자 줄을 서 있던 여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볼리비아 출신이라 매년 볼리비아를 방문하는데, 미국에서 오는 비행 스케줄이 너무 엉망이고 방문 비자도 너무 오래 걸리며 고도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응, 고도?
응, 여기 높아서 처음엔 좀 힘든데 코카 티가 도움이 많이 돼. 한 3일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조심해~ 내 볼리비아 친구가 뉴욕 지하철 공사에서 일하는데 여기 와서 코카 티 마시고 돌아갔다 약물 검사에 걸려서 직장에서 잘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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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기 전에 알아보다 보니 볼리비아가 고도가 좀 높긴 했었다. 같이 가는 은사님께 여쭈어 봤더니
고도? 증상이 조금 있긴 한데 뭐 괜찮아~
라는 간단명료한 답에 뭐 나도 괜찮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엘 알토 공항은 해발 4,058 미터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국제공항이었다. 이름부터 엘 알토, 바로 그 높은 공항이 아닌가. 산보다는 바다를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내 인생에 가장 고도가 높았던 곳은 아마 한라산 정상의 그 몇십 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지대 거주자인 내가 처음 내렸을 때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졌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시간을 넘게 기다려 도착 비자를 받았을 때 이미 다른 승객은 다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아 쓸쓸히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내 가방을 끌고 여태껏 나를 기다리고 있던 택시 기사를 만났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호텔방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쓰러져 자다 일어나 창 밖으로 본 볼리비아 산의 클래스는 동네 뒷산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장엄한, 반지의 제왕 같은 서사 영화에 나올 법한 클래스였다.
그 범상치 않은 산을 보며
아, 이 나라는 광물이 많겠구나…
라는 지극히 과학적인 생각을 한 나라는 사람은...
그리고 나중에 그 산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고, 바로 그것이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 역사에서 볼리비아의 가장 큰 역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