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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Dec 20. 2021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던 과외

그리고 과외비는 0원이었다.  

     십여 년 전 미국 의사 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 애란원이라는 미혼모분들을 돕는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검정고시 준비를 도와주는 것이었는데, 나는 예과 시절 과외를 좀 했었고 나름 좋은 선생님으로 명성이 있었기 때문에, 인생에 별로 없을 내 시간의 사용이 자유로운 이때에, 시간을 조금 더 쪼개어 내가 잘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소식을 들었을 때  딱 나 같은 사람이 하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 자원하였다. 그리고 나보다 대여섯 살 어린,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들이 있는 수영 씨(가명)와 연결이 되었다. 

 

 일반 과외처럼 내가 그 집에 가서 한 번에 2시간 정도 수학을 가르쳐 주는 방식이었는데, 

우리 수영씨, 머리는 반짝반짝 팽 돌아가는 게 보이는데, 기본이 안 잡혀 있어서 힘들어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공부를 했으면 공부 곧잘 했을 것 같은 머리인데, 살짝 안타까웠다.  아, 이거 조금만 더 잡고 시키면 잡힐 것 같은데... 하는 선생님으로서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미 어른인 애 엄마를 내가 예전에 과외학생 잡듯이 잡을 수도 없고, 그냥 조곤조곤 몇 번이고 다시 설명을 해 주며 뭐가 중요한 건지 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실 수영씨에게 궁금한 것들이 참 많았다. 

어떻게 용감하게 혼자서 애 낳을 결심을 했는지, 아이 아빠랑은 어떻게 지내는지, 혼자서 애 기르면서 힘든 점들은 어떻게 버텨나가는지, 검정고시 붙고 나면 앞으로 계획은 뭐가 있는지 등등. 지금 같으면 곧잘 하나 둘 물어봤을 텐데, 그때는 너무 소심해서 하나도 못 물어보고 묵묵히 수업만 했다. 그래도 수업 횟수가 점점 반복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고, 수영씨가 자기 얘기를 조금씩 해 주기도 했다.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고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했는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 얘는 내 아이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그랬다. 어느 날은 검정고시 제도를 나한테 설명해 주면서 과락이 어쩌고 저쩌고 몇 점 나온 누구 엄마는 붙고 누구는 떨어지고 어쩌고 하면서 걱정을 하길래, 수영씨 정도면 내가 하라는 것만 성실하게 하면 별문제 없이 통과할 거라고 말해줬더니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진짜요? 하던 것도 생각난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붙고 나면 기관에서 직업 교육을 도와주는데, 미용 보조사와 간호 조무사 두 가지가 있다고 어느 것이 더 좋을 것 같냐고 물어보길래 간호 조무사가 취업하기가 더 쉬울 것 같다고 그걸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내 의견을 살짝 말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미용 보조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에잇, 답정녀 같으니라고! 



   그런데 이 과외는 참 쉽지 않았다. 

이 애엄마는 바빠서 그랬는지 내가 내 준 숙제도 잘 안 해 오고, 수업도 종종 빼먹었다.  어떤 날은 집 앞까지 갔더니 오늘 수업 있는 거 잊었다고 다음에 하면 안 되냐고 해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지하철도 안 다니는 대중교통의 사각지대 목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까지 한 번 가는데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것 같은데, 그렇게 문 앞에서 연락받고 돌아오면 정말 맥이 탁 풀렸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 이런 과외 학생은 정말 처음일세 하며, 

돈 받고 하는 과외면 과외비 돌려 드리면서, 

" 어머니, 저 못하겠습니다 " 


하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자원해서 하겠다고 한 일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마치고 싶었고, 

수영씨가 검정고시 통과해서 조금이라도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원래 하기로 했던 수학 외에 과학 과외까지 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정해진 수업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수영씨는 예상대로 검정고시를 무난히 통과했고, 

나 역시 준비하던 미국 의사 시험을 순조롭게 통과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십여 년이 지난 요즘,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바닥을 치고 정형적이던 우리 사회도 조금은 변하여 다양한 형태의 가정들이 존재하는데 찬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문득문득 수영씨 생각이 난다. 


수영씨,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잘 살고 있어? 

아들이 이제 다 커서 고등학생이 다 됐을 텐데 여전히 그렇게 예쁘고 좋아? ㅋㅋㅋ

 난 가끔 수영씨 생각해. 

 나는 수영씨 나이에 절대로 혼자서 감당하지 못했을 온갖 세상 풍파와 편견을 온몸으로 다 맞으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수영씨가 난 참 대단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했었어. 수영씨는 참 멋진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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