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증조할머니는 그 옛날에 연애결혼을 하신 신여성이셨다고 한다
오랜만에 고모할머니를 뵈러 갔다.
우리 고모할머니는 나이 차이가 꽤 있는 아빠의 사촌 누나로, 내가 어릴 적부터 종종 찾아뵙던 분인데 참 곱고 화사하며 여성미가 넘치시는, 연분홍빛 살구꽃 같은 분이시다. 심지어 신여성으로 그 옛날 의대를 다니신 나의 머나먼 동문 선배님이시기도 한데, 예과를 마치시고 고모부 할아버지를 만나셔서 결혼을 하시느라 공부를 마치지는 못하셨다. 뭐 내가 의사 아니면 할 게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때려치우셨단다. 아, 그 강단이란! 그리고 그 살짝 이북 냄새나는 강원도 억양으로 한 마디 하셨다.
" 그런데 우리 동기 중에 의사 한 애들은 다 빨리 죽었어~ 의사가 힘든가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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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모할머니를 뵙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할머니는 내가 잘 모르는 나의 증조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다. 아빠랑은 또 다른 관점에서 나오는 고모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는 참 좋아한다. 매 번 뵐 때마다 모르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조금씩 나오는데, 이번에 나온 이야기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의 연애 이야기!
나의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교회 성경 학교에서 만나 信결혼을 하셨단다. 아니, 그 옛날에 연애결혼이라니! 증조할아버지는 그 옛날에 증조할머니께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며 여자를 위해줄 줄 아는 신사셨단다.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몸도 좋아 그 동네에서 유명하셨다는데. 나는 비록 뵌 적이 없지만 이목구비 뚜렷하고 한 감수성 하셨던 우리 할아버지를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그렇게 두 분이서 오손도손 신앙생활하시면서 그 동네 학교도 짓고 하셨단다. 그렇게나 성품이 좋으셨단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격동의 역사로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그렇게 눌러앉게 되면서 피난민으로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나는 꼬꼬마 어린이 시절에 낯을 너무 많이 가려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말을 잘 하지 않았는데,
고모할머니 댁에서 껌딱지처럼 아빠 옆에 딱 붙어서 아빠랑만 조잘조잘 얘기하는 나를 보고
" 얘는 아빠랑 사랑에 빠졌네. 연인이다 연인 " 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고모할머니가 코로나 때문에 2년이 넘게 못 뵈다 뵈었더니 너무나도 변해있었다. 나를 못 알아보시는 것은 당연하고, 금방 물어본 것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하시면서. 치매가 오면 단기 기억은 사라지고, 오래된 기억들만 남는다더니. 당신의 90년 인생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지금을 살다 또 과거로 돌아갔다를 반복하시는 고모할머니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나마 그렇게 캐 오신 기억을 나랑도 나누고 하시지만, 그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공부하고 시험 보고 수련받고 일하면서 내가 있는 자리에서 오롯이 내 삶을 사는 동안, 나는 막연히 내가 잠깐 떠나온 그 세상은 내가 떠나왔던 때의 모습에서 별로 변하지 않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당연한 진리대로 그 세상은 내가 없다고 해서 멈추고 나를 기다려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큼성큼 지나가 버린 시간의 뒷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 시간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던 수년 전 그 말이 내 귓가에 자꾸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