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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Dec 02. 2021

 逆 문화충격.

내가 이상한 걸까 네가 이상한 걸까.

  코로나로 국경이 닫힌 지 근 2년 만에 길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생기고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반 만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의 국가, 나의 조국 대한민국으로 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무장해제하고 편안하게 내가 될 수 있는 곳이건만, 강산이 한 번도 더 변할 시간을 바다 건너 미쿡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보내고 온 나에게는 뭔가 모를 이해되지 않는 까끌한 자갈도 간혹 밟힌다.


자, 이야기해보자. 내가 이상한 건지, 네가 이상한 건지.

    



1. 머리 하던 날


 2020년 3월, 역병이 창궐하여 뉴욕의 미용실들이 문을 닫은 이후 줄곧 셀프 미용으로 가꾸어진 내 머리에 드디어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한국에서는 이런 머리를 '히피펌'이라는 멋스러운 이름으로 부른다). 내 머리는 전형적인 동양인 머리 중에서도 천연매직 직모이기 때문에 웬만한 펌은 머리 감고 나면 금방 풀린다. 그래서 제일 작은 로드로 뽀글뽀글 말아야 펌 당일은 살짝 부담스러울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나오는데, 이번에 하려는 머리는 그중에서도 더 뽀글뽀글한 머리라 과연 내 머리로도 저런 스타일이 나올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미용실로 들어섰다.


난 단지 이런 머리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대략 원하는 머리를 설명하며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역시나 역풍이 거세다.


" 펌 해 보기는 하셨어요?", "마지막으로 펌 언제 하셨어요?", "머리 이렇게 하셔서 관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후회하실 텐데요" 등등등.


" 하하하, 아, 그렇죠... 요즘 이런 머리 하는 사람 많이 없죠? 괜찮아요~ " 했더니,


" 원래 스타일이 좀 특이하신 가봐요~ "


흠... 언니는 매일 S컬 세팅펌만 마셨나 봐요.  


 결국 나의 의사를 관철시키고 추가로,

" 아, 근데 저 머리 원래 펌 잘 안 나와서 제일 작은 로드로 오래 말아주세요~"


라고 그랬더니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조금 위의 대사들을 다시 반복하기 시작하신다.

조금 무례하게까지 느껴져서 한 마디 할까 했지만 머리 하러 와서 각 잡아서 뭐하리.

심지어 말은 머리를 중간에 한 번 풀어보더니,

"이 머리는 펌 안 나오는 머리가 아닌데요? "

...... 어쩌라는 건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 머리를 풀 때가 되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라는 표정으로 하나 둘 로드를 풀던 그 언니는 머리가 나오자,


"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요...?"


그러면서 갑자기 스타일링 추천을 마구마구 해 주기 시작하셨다.


그럼, 잘 어울릴 것 같은 머리니까 내가 왔을 것 같지 않아? 언니는 날 오늘 처음 보지만, 난 이 머리로 수십 년 살았는데...?

내 머리, 내 돈 주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데, 왜 내가 그녀를 설득해야 되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튿날 머리 감고 말리자 우리 엄마 왈,

"머리 했는지 표 하나도 안 난다~ "하면서 그냥 부스스한 머리가 되어버렸다.



2. 수영장의 어르신

 

 부모님이 사시는 본가에는 다행히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이 있다. 어느 날 수영을 마치고 풀에서 나오는데, 누가 내 수영복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건 또 뭔가.

하며 옆을 봤더니, 웬 어르신...이라고 말하지만 아주머니께서 내 수영복을 끌어내리면서 "이제 됐다." 하시는 것이다. 내 수영복이 컷이 조금 높았나...? 그래 봤자 원피스 수영복인데 얼마나 높았겠어.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다지 나쁜 마음으로 하셨을 것 같지는 않아 허허 웃으며 넘어갔다.  뉴욕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매니저를 부르든지 뭔가 조치를 취했을 테지만, 왠지 여기서는 아, 아줌마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넉넉한 마음가짐이 생겼다.






  오랜 기간 단일민족 국가로 살아온 한국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 비해 common sense (상식)가 꽤 common 한 곳이다. 내가 답이 A라고 생각하면 옆집 영희도 A라고 생각하고 뒷집 상수도 A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미국처럼 답안지에도 없는 Σ(시그마) 같은 것을 답이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무턱대고 우기는 일은 잘 없다(물론 다른 경우의 우격다짐이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ㅎㅎ ).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병폐도 있지만, 장 기간의 타향살이로 지친 나에게 지금으로서는 생존의 레이더를 잠시 꺼 두고 그냥 묻어갈 수 있는 내 나라가 참 편안하다.


 오늘, 엘리베이터 안에서 초등학생 꼬마가 내리면서 나에게 인사하는데 뭐라고 답해줘야 될지 몰라 어물쩍 마스크 뒤로 숨어 넘어가버렸다. 뉴욕 아파트에 살 때는 내 옆 집 정도밖에 몰랐는데  여기서는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눈다. 뉴욕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고민들을 하면서 느끼는 이 공동체 의식이 나는 좋다.


아, 근데 진짜 뭐라고 답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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