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뉴욕 의사의 언어교환 앱 사용기.
얼마 전 나의 가면 증후군 편에서 나온 온라인 이태리어 말하기 모임에 갔다 말 한마디 못하고 나온 후,
Ciao, Bella 2- 듀오링고를 통해 들여다본 나의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 이야기 https://brunch.co.kr/@jeunloves/48
내가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지!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학원이나 코스를 들을 만큼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기는 힘들고, 난 의외로 사람을 많이 가려서 처음부터 온라인 상에서 모르는 사람과 화상 채팅을 막 하고 그런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뉴욕의 이탈리안 친구한테 부탁할까 하다 아무래도 뭔가 장기적으로 하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가 더 좋을 것 같아 생각 끝에 언어 교환 앱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나는 사실 여기서 이런 걸 쓰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는데 한국 웹사이트에서 이런 게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 알았다. Viva Corea! :)
우선 앱스토어에 가서 리뷰수가 제일 많은 것 2개를 깔고, 잠깐 써 보니 금방 나한테 더 잘 맞는 앱이 가려졌다. 나는 모국어가 한국어고 영어를 생활에 별 불편 없이 전문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구사하며 분야에 따라 모국어보다 더 편하게 하는 사람으로 이태리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첫 번째 앱에서는 사용자 지정에 이런 캐터고리가 없어서 별 고민 없이 두 번째 앱에 안착했다. 사진과 자기소개를 쓰는 란이 있어서 페북에서 퍼다 온 내 사진 한 장과 내가 원하는 바를 작성한 후,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본 후 내일을 기약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 사이에 나에게 "안녕하세요", "Hi", "Ciao" 등의 인사가 쏟아져 들어와 있었다. 예전에 아는 언니가 데이팅 앱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 가입했을 때 승부를 봐야 한다고 하던데 이게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이와 프로파일을 보며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좀 추린 후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추려진 사람 중에 하나인 내 언어 친구 1호 P 오빠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이태리 오빠다. 보통 언어는 어린 층에서 많이 배워 그런지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은데 나보다 살짝 나이가 많고 영어도 프리 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되고 여행을 좋아해서 이곳저곳 많이 다니는데 여행 가서 바디 랭귀지로 말하는 게 지긋지긋해져서 2년째 영어를 공부해오고 있다는 우리 P오빠는 처음에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단다. 이야~ 의지의 이태리인일세! 맨 몸으로 언어 학습의 장에서 구르신 터라 언어를 실용적으로 익히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어 얘기하다 궁금하고 답답하면 영어로 계속 얘기하는 나에게 이태리어를 쓰기를 종종 권면하며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알려 주는 살짝 오지랖의 이 이태리 오빠는 나의 이태리어 여정에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다. 이태리 북부의 산지에 살며 마운틴 바이킹을 좋아하셔서 쉬는 날이면 2-3시간씩 주변의 산으로 바이킹을 가신다는 이 오빠는, E 바이크 타고 맨해튼을 누비는 나와 여러 모로 비슷하며 다른 점이 많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파트너로 거듭나고 있다.
이태리 남부의 해안 도시에 사는 D군은 나보다 어린 이태리 동생이다.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클래식 피아노를 꾸준히 해 오다 전공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 이태리 동생은 캐나다로 유학 갈 계획이 있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가 코로나로 길이 닫히긴 했지만 계속 고민 중이라는데, 질문도 엄청 구체적이고 꼼꼼하며 문법 같은 것도 엄청 많이 물어봐서 내가 좋아한다. 날씨가 좋으면 바다에 가서 프리 다이빙을 한다는 이 자유로운 영혼에게는 내가 딱 그 나이 때 유학/이민 와서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를 조금씩 해 주고 있다. 캐나다에 유학 오면 내가 밥 한 번 사 주마!
나의 마지막 언어 친구 C 언니는 한국 남자랑 결혼한 케이스다. 세상은 좁고 읽는 눈은 많으니 이 언니 얘기는 여기까지! :)
이태리어 공부하다 보면 어릴 때 영어 공부하던 생각이 자주 나는데, 그때보다 지금은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많은 자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 놓여 있다. 감사할 일이지만 반면 자료가 너무 넘쳐나서 뭘 골라야 할지 고민되고, 반복 학습이 중요한 언어 공부에 한 자료를 꾸준히 보는 것이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새로운 언어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와 같아서 참 좋다. 이태리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탈리아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확 늘어 뉴스에서도 이태리 기사가 나오면 관심 있게 한 번 더 보고, 나의 언어 파트너들이 사는 도시들에 관해서도 구글맵에서 찾아보고 한다- 우리 D 동생은 이태리 지도 모양의 장화굽 부분에 산다- 이태리 하면 로마, 밀라노, 베니스 정도밖에 모르던 나에게 나의 친구들은 이태리의 소도시들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이태리인지라 그냥 동네 골목에서 찍어서 보내 주는 사진들도 무슨 화보 같긴 하지만. 예전만큼 머리가 반짝반짝하지도 않고 단어 성별 따라 어미 바꾸는 것도 힘들고 어렵지만, 놓아버리지 않고 꾸준히 해야지. 언젠가는 자유롭게 이태리어를 구사하며 나의 언어 친구들과 이태리어로 말할 수 있게 되는, 이태리어로 쓰인 문학 작품과 그 수많은 예술 작품을 음미하는 그날도 언젠가는 꼭 오리라 생각한다.
사진의 출처는 여기 https://www.italymagazine.com/featured-story/pronomi-combinati-ita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