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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Apr 23. 2022

이 세상의 모든 완벽주의자들에게

네, 바로 당신 이야기입니다.

     깡마른 몸에 형형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S 씨는 60대 초반의 중년 여성이었다. 짧은 쇼트커트 머리가 잘 어울리는 스타일리시한 분으로 밀라논나 할머니의 조금 젊은 버전이라고 하면 쉽게 상상이 될까? 깐깐한 인상이 마치 잔뜩 털을 세우고 웅크린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연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아파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조심 다가간다. 괜찮아,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몸이 편찮으신 분들이 평소보다 좀 더 예민해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나 역시 평소보다 좀 더 부드럽고 나이스 하게 다가간다. 스타일리시한 인상답게 역시나, S 씨는 패션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분이었다. 췌장암에 걸린 지는 2년이 조금 넘었는데 요 며칠 웬일인지 통증이 잘 조절되지 않아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집에 두고 온 아들 걱정,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병세에 대한 불안, ' 내가 없으면 $$$는 누가 하나' 사업에 대한 염려 등등으로 S 씨의 마음은 참 복잡했다.


     첫 며칠간은 원래 드시던 통증약을 용량을 늘리며 조절해 봤지만 잘 듣지 않고 되려 졸림, 구토,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더 크게 생겨 결국 통증의학과에 신경 차단술(암세포 주변의 신경을 차단하여 통증을 줄이는 시술)을 의뢰하게 되었다. 보통은 의뢰한 날 바로 어떤 시술을 할지 결정하고 곧이어 시술 일정이 나오는데 오후가 되도록 아무 말이 없길래 알아봤더니 S 씨가 일단 생각 좀 해 보겠다고 하셨단다. 원래도 예민한 S 씨, 이걸로 마음이 더 시끄러울 것 같아 병실을 한 번 가 보았다. 역시나 S 씨는 담요를 둘둘 두르고 특유의 살짝 찡그린 인상불안한 눈빛으로 누워계셨다.

     아픈 건 좀 어때요 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딱 부러지는 분 답게 시술 자체에 대한 이해는 잘하고 계셨다. 듣자 하니, 이 시술을 한다고 내 통증이 100% 다 나아지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원래 모든 시술은 다 그렇다. 시술자가 100% 효과를 보장하는 시술은 아마도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지금 몸이 많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덥석 했다가 괜히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두렵고, 지금 이거 했다가 나중에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봐 두렵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S 씨의 생각의 저변에는 자신의 병세가 나빠지고 있다는, 죽음으로 한 발짝 두 발짝 더 가까워지고 있다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그 두려움도 너무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내 환자니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지금 만이라도 마음이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로의 안타까움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그녀가 말했다.

 나, 사실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봐 너무 겁이 나요...

 

그리고 그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를 포함한 수많은 완벽주의자들의 고뇌가 마음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로 몸져누워 있는 순간조차 그것을 놓을 수 없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우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지금까지도 너무 잘해 왔다고, 당장 결정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지금 하는 대로 해 보다가 안 되면 다음에 받아도 되는 거니까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그냥 쉬라고,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하고 달래준 후 병실을 나왔다.


  그녀는 결국 시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고, 며칠 뒤 퇴원을 하였다. 퇴원하던 날, 웃으면서 자기가 쉬운 사람은 아닌데 진심으로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도 웃으면서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 깡마른 몸 안의 더 메마른 마음에 한 줄기 안식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완벽해져야 한다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순간   좋은 결정,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없이 정보를 습득하고 장단점을 재어보며 정량화되지 않는 것들을 정량화하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끊임없이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예측해보려는 나의 이런 시도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그때 그녀에게 시술을 받으라 말해주고 싶었다. 시술하는 의사가 설명은 그렇게 해도 대부분  합병증  생기고 증상은 좋아진다고.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세계 정상급의 의사들에게    맡겨놓고 지금  순간 당신만큼은 제발   편하게 쉬라 말해주고 싶었다. 스스로는 놓지 못해 끙끙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가 잠깐 대신 들어주고 싶었던 이런 속마음을 그녀는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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