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밀라노 행 기차에서
귤을 까먹었다. 껍질은 두꺼웠지만 말랑거렸다. 시지 않고 단 맛이 강했다. 커다란 씨앗이 한두 개쯤 들어있었는데 먹는데 불편하진 않았다. 스위스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두알쯤 먹다가 스케치를 시작했다. 심심했는지, 졸렸는지, 그때의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약간의 죄책감과 짧은 고민 끝에 결국 충동적으로 선택하는 것 아니겠는가. 때마침 창문으로 오전의 긴 볕이 스며들었고, 그 앞에 귤이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