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부자의 에피소드 1
아침 7시, "띵동" 휴대폰에서 문자 알림음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눈을 부스스 비비며 침대에서 박차고 나와 고요하고 적막한 식탁의자에 한가로이 앉아 충전 중인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확인한다.
주문 15건, 취소 0건, 반품 0건
“오늘도 주문이 꽤나 들어왔네! 12시까지 박스포장해서 밖에 내놔야겠다.”
평소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빠듯했던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온 남편이 이야기를 했다.
“자기야, 자기 일하고 싶어? 그럼 이건 어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주섬주섬 꺼내 들고는 어떤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애들 키우면서 어디 나가서 일하긴 힘들잖아, 현실적으로. 집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뭔데?”
남편의 말을 재빠르게 되받아 치며 말했다. 마음속엔 호기심이 일렁였지만 무심한 듯 곁눈질로 남편을 흘겨보았다.
“네이◯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해 보는 거야.”
험하고 험한 산에 가까스로 올라가 정상에 등반해 "야호" 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처럼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좋은 생각인 것 같긴 한데,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항상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남편이 이 날따라 더욱 수상쩍어 보이는 데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의구심 마저 들었다.
“방법이 있어. 요즘 클래스◯◯◯이라는 강의 플랫폼에서 경제 유튜버로 유명한 신사임당이 클래스를 오픈했대! 그것보고 그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는데, 해볼래? 그 사람도 온라인스토어 개설해서 엄청 돈을 많이 벌었다는데 온라인 강의플랫폼에서 이번에 그것과 관련된 강좌를 오픈한다네. 성공하는 셀러가 되는 노하우를 알려준대.”
아니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다고?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싶은 욕구도 있었지만 남편이 툭 던진 이 말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이 물결을 일렁이게 하듯 고요한 내 마음속에 파동처럼 다가왔다.
어린이 중국어 지도사, 어린이 한자 지도사 자격증을 연거푸 두 개나 땄었지만 이것이 나의 경력 단절을 끊어내는 수단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헛된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꿈이라고만 생각하고는 묵묵히 집안살림과 아이의 치료만 매달렸고, 육아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동시에 작은 습관을 만들어 나갔다. 아이가 놀이치료를 하러 들어갈 때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어 이 텅 빈 시간을 책을 읽으며 채워나갔고, 자기 개발서를 읽으며 한발 더 도약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픈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성장했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는지 과정들을 탐닉하기도 하였고 육아서를 읽으며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어떻게 돌봐야 되는지, 엄마표 학습은 어떻게 시켜야 하며, 책을 안 읽는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되는지 등의 교육서에도 푹 빠지게 되었다.
그런 자기 개발서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부터 대단한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 말단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가던 사람들. 그리고 실패를 기회라 여기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다 문득 나의 사회 초년생시절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 당시에 비록 좋은 대학교는 아니지만 그 속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사력을 다해 공부해서 교직이수에 복수전공까지 마치고 졸업해서 첫 회사에 입사를 했지만 늘 생각해 왔던 이상과 현실사이에 큰 괴리가 있었다.
내가 회사에 가서 했던 일들은 단순업무에 불과했고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타서 대접하는 일과 단순계산을 필요로 하는, 여자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일을 맡기지 않는 보수적인 회사였다. 하지만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 단순한 업무조차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실수연발에 아주 가끔은 회사에 손실을 끼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참 거만했던 시절이었다. 마치 새장 안에 갇혀있는 새처럼 탈출만을 꿈꿨으니까.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저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엄마인 역할에 머물러 있지만 언젠가는 집이라는 알을 깨고 사회로 나갈 거라고 묵묵히 생각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온갖 생각이 한 차례 거센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일단 쇼핑몰에서 물건을 팔려면 그 물건을 사야 될 테고, 혹여나 안 팔려서 손해만 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업자등록증 발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개설해야 하는지 등등의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어떻게든 안 되는 이유만 찾으며 핑계되기 시작했지만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우니 그냥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달콤하게 들려왔다. "그래 그냥 사탕발린 말인지 뭔지 아직 모르는 거잖아. 해보지도 않았는데. 까짓 거.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지 뭐!"
일단 신사임당이 누구인지부터 검색에 들어갔다. 유튜브도 봤는데 많은 사람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동기를 부여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직설적으로 뼈 때리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때로는 다른 전문가를 초빙해 토크 형식으로 진행하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그 당시에 그의 말이 강하게 끌렸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강의에서 나오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다. 요즘은 도매를 전문으로 하는 사이트가 많아서 내가 직접 발로 뛰지 않아도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도매사이트에서 주문을 넣기만 하면 알아서 배송해 주었다. 리스크가 없다는 것이 가장 끌렸다.
스마트스토어 개설부터 시작해서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은행에 가서 사업자통장도 발급받았다. 그리고 정말 하라는 대로 물건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주문이 들어왔고 며칠에 한 번씩 주문 들어왔다는 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토어를 오픈하고 몇 개월 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라는 이상한 놈이 중국을 넘어 전 세계를 초토화시켰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놀이터 죽돌이 죽순이였던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집안에서만 보냈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 티브이는 거의 보여주지 않았고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은 물론 매일매일 엉망진창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머릿속에서 전기스파크가 뇌 속에서 춤을 추며 신경세포를 하나하나 깨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맞다. 운명적인 아이템을 발견한 것이다.
"전국의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바로 그 아이템! 그래 바로 그거야! 집콕놀이 아이템!!!!!"
다양한 모양의 나무조각들이 들어있는 대형회사의 제품을 일단 올려보았다. 적합한 키워드를 찾기 위해 토끼눈처럼 눈이 빨개질 때 찾아보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몇 가지를 수정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하나둘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템 수급이 일정치 않았다. 주문이 많이 들어왔는데도 그 이상을 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슷한 아이템을 발굴하고 아이템을 주문해 내가 직접 만들어서 과정을 촬영하고 이미지를 보정해 나가는 수작업을 거쳤다. 업로드 뒤 크리스마스 한 달 전쯤부터 주문이 폭발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택배 상자가 무려 15개씩 나갔다. 내 손으로 하나씩 보내다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택배업체와 계약을 하는 게 비용이 더 저렴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택배회사와 계약까지 마치게 되었다. 진짜 이젠 대박칠일만 남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