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복이 Jul 28. 2022

2학기가 두려워요.

-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수업을 앞두고

올해는 유독 2학기가 다가오는 게 두렵다. 바로 고등학교 3학년 수업 때문이다. 예전에도 3학년 담당은 많이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올해는 특히 더,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적어진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잠을 자거나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을 말하는 게 아니고, 공부를 하면서도 수업을 안 듣는 학생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어 시간에는 수학 문제를, 수학 시간에는 영어 문제를, 영어 시간에는 국어 문제를 심지어 국어 시간에 다른 국어 문제를 풀기도 한다. 내가 들어가는 8개 학급 중 적은 반은 대여섯 명, 많은 반은 10여 명 정도가 (다른 공부를 하느라) 수업을 듣지 않는다. 아마 2학기가 되면 서너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학생들에게 겨우 지켜낸 나의 원칙은 ‘귀를 막지 말라’ 정도였다. 무슨 의미냐면 이어폰 꽂는 걸 금지한 건데, 다른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는 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참 기가 막히는 마지노선이 아닌가. 글로 써 놓고 보니 더 비참하다.

 

예의를 갖춰 몰래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그래도 다 티가 나서 기분이 나쁜 건 매한가지다.) 아예 대 놓고 다른 문제집을 푸는 학생도 있다.  혼을 내도 소용이 없다. 그런 아이들은 당당하기까지 하다. 대학 입시라는 큰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자신이 대학에 못 가면 선생님이 책임져 줄 거냐는 논리이다. 물론 여러 해 지켜봤을 때 그렇게 얕은 시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결과가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인지 그런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래도 1학기 때는 수시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위주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이 제법 있는 편이다. 3학년 1학기까지 내신 성적과 학생부 기록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시가 아니라 수능 위주의 정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자신들을 ‘정시파’라고 부른다.) 1학기 때부터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 자기 학습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두 해 전부터 수시 입시 비중을 줄이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우리 고등학교에도 그런 ‘정시파’들이 부쩍 늘었다. 그래서 1학기부터 수업 분위기가 잘 안 잡힌다. 


그렇다고 내가 1학기 동안 수업다운 수업을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올해 맡은 3학년 과목은 ‘현대문학감상’이라는 과목으로 이름만 들으면 최신 소설이나 시를 왕창 읽을 것 같은 수업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능에 반영된다는 ebs수능특강 ‘문학’편으로 수업을 한다. 물론 교재에 실린 소설과 시의 맛을 느끼게 해 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문제풀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 학교 3학년 수업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3학년 1학기까지는 교과서로 내실 있게 수업을 하는 훌륭한 교사들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나도 그런 교사가 되고 싶어서 수업 계획을 짤 때 수능특강 교재로 수업을 하는 걸 반대해 봤지만 3학년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5명 중 나만 반대할 뿐이고, 강하게 반대하지도 못했다. 교재가 중요하냐 수업을 잘하면 된다는 설득에 은근히 넘어가 주며 타협을 하곤 했다. 그러한 나의 부끄러움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론적으로 보면 우리 학교 3학년 수업은 (국영수가 다 그렇다.) 수시와 정시 모두를 위한 수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특히 ‘정시파’는 우리가 수능특강으로 수업을 해도 수업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하기 전부터, 아니 1학기 수업을 하는 내내 2학기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이 문제는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3학년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일 것이다. (얼마 전 여기 브런치에서도 비슷한 주제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는 ‘수업을 잘하면 애들이 잘 듣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수업을 더 잘 듣기 위해 앞자리와 바꿔 앉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수업의 질은 좋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수업 내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공통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3학년 담당 교사들에게 이런 고민을 말하면 대부분 상황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포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애들이 자기 공부하겠다는 걸 어쩌겠냐, 적어도 수업에 방해는 안 되지 않냐는 반응도 있다. 이런저런 연수를 들으며 수업 노하우를 강의하는 교사들의 시선을 배워보려고 해도 뾰족한 답이 없다. 요즘 학생들은 유튜브 세대니까 수업을 영상으로 찍어서 속도를 제각각 조절해서 보게 하라는 어떤 교사의 조언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과연 학생들에게 강제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실제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도 물었다. 직접 물어봐도 잘 대답을 안 하니까 익명으로 대답할 수 있는 온라인 설문을 돌렸는데 내가 가르치는 230여 명의 학생 중 34명이 대답해줬다.

“다른 공부를 하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학기 수업을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는 질문에 학생이 답한 내용이다. 물론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의견도 있고 간식을 주며 퀴즈로 수업을 해달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대답과 비슷하게 자습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이 절반이 넘었다. 

답이 없어서 두렵다. 애초 내가 답을 내릴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의 시작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고등학교 수업이 대학 입시를 따라가는 것 자체를 막을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수업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단 몇 명만 고개를 들고 있고 나머지는 자기 공부를 하는 교실은, 상상만 해도 견딜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어떤 학생의 답변이 계속 눈에 남는다.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문학 작품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배우는 수업을 만들어 주세요. 결국 학생들을 수업에 스스로 참가시키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설령 학생들이 보지 않거나 대충 할지라도, 선생님이 포기하지 말고 하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다. 누구도, 주변의 어떤 교사도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답은 없지만 해결할 수 없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학생의 답을 스승 삼아 나의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단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오늘의 답이다.

작가의 이전글 "샘은 우리 엄마 같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