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욥기 묵상

욥기 21장

그가 한 일에 대해 누가 갚겠는가? _욥21:31

by 제이프릭

1 그러자 욥이 받아 대답했습니다. 2 "내 말을 잘 들어 보게. 이것으로 자네들의 위로를 삼으시게. 3 내가 말하는 동안 좀 참고 있다가 내 말이 끝나면 조롱하게나. 4 내가 사람을 원망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나? 5 나를 잘 보고 놀라게. 자네들의 손으로 입을 막게. 6 나는 이것을 생각하면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진다네. 7 어떻게 악인은 그렇게 세력을 키우면서 늙을 때까지 계속 사는 건가? 8 그들의 눈앞에서 그 자식들이 그들과 함께 굳건히 서고 그 자손들도 그렇게 되면서 말일세. 9 그 집들은 안전하고 두려울 게 없으며 하나님의 매도 그들 위에는 있지 않다네. 10 그 수소는 문제 없이 번식하고 그 암소들은 유산하는 일 없이 새끼를 낳는다네. 11 그들은 자기 자식들을 양 떼처럼 내보내고 그 어린 자녀들은 춤을 춘다네. 12 그들이 탬버린과 하프를 쥐고 피리 소리에 즐거워하고 있다네. 13 그들은 부유한 나날을 누리다가 한순간에 무덤으로 내려간다네. 14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우리를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길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15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합니까? 그에게 기도해서 얻을 게 무엇입니까?'라고 말한다네. 16 그들의 복이 그들의 손에 있지 않으며 악한 사람들의 계획은 내게서 멀다네. 17 그런데 악인의 등불이 꺼지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그들에게 재난이 몇 번이나 닥쳤는가? 하나님께서 진노해 슬픔을 안겨 주시던가? 18 그들이 바람 앞의 짚과 같이, 폭풍에 휘날리는 겨와 같이 된 적이 있는가? 19 '하나님께서 그 범죄를 쌓아 두셨다가 그 자식들에게 갚는다'고 하지만 그에게 갚아 주어야 그가 깨닫게 되리라. 20 그 눈이 그 멸망을 보게 되고 전능하신 분의 진노를 마셔야 할 걸세. 21 그의 달수가 다해 죽게 되면 제집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22 하나님께서 높은 사람들도 심판하시는데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칠 수 있는가? 23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기력이 정정해 행복하고 평안하게 삶을 마친다네. 24 그의 몸은 기름기가 넘치고 그 뼈는 골수로 미끈거린다네. 25 그런데 어떤 사람은 좋은 것은 누린 적이 없이 죽을 때도 고통 가운데 죽는다네. 26 이들이 다 같이 흙 속에 누울 것이요, 구더기가 그들 위에 득실거리지 않겠는가. 27 자네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해하려는 자네들의 속셈을 다 잘 알고 있다네. 28 자네들이 말하기를 '그 대단하던 사람의 집이 어디 있는가? 악한 사람들이 살던 곳이 어디 있는가?' 하는데 29 자네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않았는가? 그들이 한 말을 자네들이 깨닫지 못했는가? 30 악인이 멸망의 날에 목숨을 부지하고 진노의 날에도 살아남는다고 말하지 않던가? 31 누가 그 얼굴에 대고 어쩌고저쩌고하겠는가? 그가 한 일에 대해 누가 갚겠는가? 32 그가 무덤으로 실려 갈 것이고 사람들이 그 무덤을 지켜 줄 것이네. 33 골짜기의 흙덩어리가 그를 부드럽게 덮어 줄 것이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그보다 앞섰듯이 모든 사람이 그 뒤를 따를 것이네. 34 그러니 자네들이 대꾸하는 게 다 거짓인데 그렇게 지껄인다고 내게 위로가 되겠는가!" _욥21:1-34, 우리말성경


소발의 저주에 가까운 연설이 끝나자, 조명은 다시 욥에게로 향한다. 욥은 이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무기를 들고 반격에 나선다. 그것은 개인적인 고통의 호소나 신학적 항변이 아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 그 자체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적인 호소보다,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관찰자의 단호함이 묻어난다. 그는 마치 법정에서 반대편 주장을 탄핵하는 변호사처럼, 친구들의 주장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거짓으로 드러나는지를 조목조목 증명해 보인다.


이 장면은 욥이 친구들의 '인과응보' 신학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는 친구들의 닫힌 교리문답의 세계를 깨부수고, '악인의 형통'이라는 불편한 진실로 가득한 실제 세상으로 논쟁의 장을 끌고 나온다. 이로써 친구들의 모든 논리는 힘을 잃고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그들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의 증거 앞에서, 친구들은 처음으로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악인은 그렇게 세력을 키우면서 늙을 때까지 계속 사는 건가? _욥21:7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반란군의 주동 세력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는지 찾아보면 욥의 마음을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그들은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났고 또 지금까지 살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반대편에 섰던 이들과 그 가족들은 고문과 상처, 병, 치욕을 모두 감내하고 죽거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욥의 친구들은 악인의 비참한 종말을 말하지만 그런 당연해 보이는 정의가 세상에서는 실현되고 있는가 물을 때 답할 수 없다. 다음 장의 엘리바스도 욥의 질문은 회피한 채 어쨌든 너는 심판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 몰아간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께서 왜 저 악인을 저렇게 두시는지 정말 알 수 없다. 온 세상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왜 의인의 죽음과 악인의 형통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과의 약속과 의로움을 지켜내려 애써온 나는 - 물론 실수도 많았지만 - 왜 이렇게 삶에 허덕이며 고통 속에 거하며 아프고 우울해지며 늙어가는가? 평안을 주십사 하고 기도하고 부르짖고 외쳐도 그 누림이 그렇게도 한시적이고 순간적이고 곧 다시 괴로움에 빠져드는가? 나는 그저 순종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왜 평안하게 살아가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가? 악인의 평온은 쉬워보이고 굳건해 보이건만 왜 의인의 기쁨은 어렵고 일시적인가?


이 질문의 답은 신자의 평생의 과제다. 답을 알아도 세상과 천국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유혹과 싸워야 한다. 욥의 싸움은 신자된 우리 모두가 함께 맞닥뜨려야 할 싸움이다.


악인이 멸망의 날에 목숨을 부지하고 진노의 날에도 살아남는다고 말하지 않던가? 누가 그 얼굴에 대고 어쩌고저쩌고하겠는가? 그가 한 일에 대해 누가 갚겠는가? _욥21:30-31


12.12 군사반란을 청산하기 위한 재판은 93년 이후에야 시작되었는데, 이 때 한 검사는 '성공한 쿠데타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 사건을 묻어버리려 하다가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이 세상만 생각하는 인생이라면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결국 심판대 앞에 서게 됨을 믿는 신자라면 이 말은 어리석은 말이다.

악인의 수명이 끈질길 수 있다. 세상에서 그들이 영화를 누릴 수 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또 현실이 그 말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반드시 갚을 날이 오고 갚을 이가 계시다. 욥은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주는 인간적인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겨내고 또 때로는 넘어지는 이 싸움 속에서 어쨌든 욥은, 또한 신자들은 연단되고 성장할 것이다. 세 친구들이 마음을 격동시켜도, 그들은 오히려 우리를 단련시키는 귀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다시 말해 그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 계심을 인식한다면, 고통은 여전하나 한편으로는 해볼만한 싸움이라는 희미한 소망을 놓치지 않고 버텨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자의 싸움은 승승장구가 아니다. 이길 때보다 질 때가 훨씬 많을 수 있다. 매번 쓰러지고 넘어져도 그것을 통해 단련되는 맷집으로 버티고 버티는 것이다. 아무리 얻어터져도 결국 일어나는 히어로물의 결말처럼 결국은 의를 외면하지 않으실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을 부여잡고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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