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커리어 여정을 톺아보기

사회인 6년차의 기록

by 노다

2015년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차가 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오다 잠깐의 짬이 생긴 지금, 한 번은 내 커리어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커리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마케팅 영역에서 일하게 될 줄은, 그러다가 영국에 살게 될 줄은, 게다가 더 뜬금없이 갑자기 개발자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돌아보니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아왔다 싶은데 이 모든 걸 한 줄의 문장으로 엮어 하고싶었던 일을 설명하자면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 긴 글 주의! : 바쁘신 분들을 위한 TLDR

MIS 석사 -> 스타트업 기획자 -> 디지털 대행사 AE -> 브랜드 마케터 -> 프론트엔드 엔지니어


학부로 경영학을 전공했고, 사실 2학년을 마치고는 부모님이 강권했던 회계사 시험을 보려고 잠시 휴학을 1년 했었는데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이 암흑기를 계기로 나는 회계 및 법 관련 과목에 젬병이라는 걸 깨달았고, 온갖 걸 다 배우는 경영학과 학부 세부 전공 중에서 기업의 전략을 짜는 분야들에 흥미를 느꼈다. 그중에서도 어떻게 IT 기술을 활용해서 기업의 이윤을 창출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세부 전공인 MIS(경영정보시스템)이 가장 재밌었다. 인사 / 재무 / 생산관리 / 마케팅이 메인으로 다뤄지는 경영학과의 커리큘럼상 MIS는 굉장히 마이너한 분야였지만 IT라는 구체적인 툴을 가지고 전략을 짜는 게 재밌었고, 이를 계기로 IT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컨설팅 분야에 뛰어들려면 석사를 하는 게 유리할 것 같다는 판단에 MIS 분야로 석사과정을 하게 됐다. 대학원 4학기 중 1학기 빼고는 교수님과 함께 연구실을 쓰는 재실 조교로 있었는데, 교수님의 커피 심부름이나 차 심부름을 하긴 했어도 내 인생의 리즈시절이었다 싶을 만큼 재미있게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매주 읽어야 하는 논문 리딩 리스트가 쏟아지는데다(졸업할 때 엔드노트에 저장된 서지정보 리스트를 세어보니 500편이 넘었더라..ㅎ) 수업시간 발제 준비 + 소논문/졸업논문 + 학회 발표 준비 + 학부, MBA 조교일까지 하느라 새벽 3시에 집에 갈 때도 많았지만, 책가방 메고 새벽의 텅 빈 캠퍼스를 가로질러 집에 갈 때면 '아 오늘 나 진짜 열심히 살았다!! 완전 뿌듯하다!!' 라고 생각하며 집에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진짜 원 없이 읽은 논문들과 집보다도 오래 있던 연구실. 그래도 철마다 바뀌는 예쁜 캠퍼스 덕에 학교 다닐 맛 났었다.


1) 첫 커리어: 스타트업 기획자

석사논문이 계기가 되어서 스투비 플래너라는 유럽 배낭여행자를 위한 여행정보 플랫폼에서 1년 동안 일했었다. 석사논문 주제를 여행정보 플랫폼으로 정하게 됐었는데(그때 한창 핫했던 주제라 교수님이 쓰라고 명령추천하셨었다.) 주제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문득 대학생 시절 유럽여행 다니면서 즐겨 썼던 스투비플래너가 생각이 났다. 여행정보 플랫폼의 성공요인을 추천 시스템 활용 관점에서 분석하는 논문이었는데, 스투비플래너 대표 메일로 문의를 해서 통계분석을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해도 되겠냐고 협조를 요청했다. 설문조사 시작 전 만나 뵙고 연구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 흔쾌히 해도 괜찮다고 허락해주셔서 한 달 동안 200여 개의 샘플 데이터를 얻었다. 이 연구 주제로 학회 나가서 참신한 주제라고 칭찬도 받고 저널에 등재도 하고 (비록 한국 저널이었지만.. 외국 저널은 리젝당함^_ㅠ) 무사히 석사과정을 마쳤다. 졸업하고 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러 회사에 갔었는데 이제 뭐할 거냐고 물으시기에 백수인데여..? 했더니 취업 준비하는 동안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잠깐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셔서 얼떨결에 그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근데 정신 차려보니 정부과제 펀딩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었고, 피티 날엔 대표님이 출장 가시는 바람에 내가 대신 피티까지 해서 결국 3천만원짜리의 펀딩을 따왔다;; 그래서 정부과제 기간인 6개월 동안 따온 펀딩을 활용해서 그동안 수익모델이 없었던 스투비플래너의 수익모델을 테스트하는 일을 했다. 그땐 내가 하는 일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몰라서 '연구원'이라는 직책을 달고 일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획자이자 디지털 마케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슬슬 핫해지던 페이스북 페이지를 이용해서 여행 관련 컨텐츠를 테스트하고 반응이 있는 테마들에 관련된 상품들을 소싱해와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리고 유럽 주요 도시에 가면 꼭 가야 할 곳, 해야 될 투어들을 버킷리스트 형태로 묶어서 여행 플래너를 생성하면 연관된 투어와 티켓들을 연계해주는 기능들도 만들었었다.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트래픽도 오르고 매출도 오르는 경험을 하면서 정말 보람 있었지만, 내가 너무 전문성이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서비스를 잘 알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좀 더 전문성을 쌓아보자는 생각으로 디지털 대행사로 이직을 하게 됐다.

유럽 주요 도시별로 여행 초보자용 튜토리얼 컨텐츠를 하루에 한 개씩 PPT 로 찍어냈었다...포토샵이 뭐에여…

2) 애드쿠아: 소셜미디어 AE + 퍼포먼스 마케팅 AE + 미디어플래너

이때까지만 해도 경험을 많이 쌓고 싶다는 열정이 넘쳤을 때라 업무강도는 심해도 상관없다, 무조건 좋은 클라이언트와 많은 캠페인을 해 볼 수 있는 대행사로 가고싶다!!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소셜 커뮤니케이션 본부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팀으로 입사해서 유튜버 리스트업 해서 광고주랑 연결하고(이때 유튜브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페이스북 페이지에 광고 시딩하는 업무를 잠깐 했다가, 국내 모 정유기업 클라이언트의 기업 블로그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다. 블로그 이외에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포스트 및 사보까지 온고잉으로 담당하면서 가끔은 시즌성 캠페인도 하는 다이나믹한 팀이었는데 (그 결과 이 광고가 만들어졌었다) 컨텐츠를 찍어내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채널의 관점에서 한 달에 어느 정도의 노출을 달성하고 있는지, 우리가 목표로 하는 타겟에게 잘 도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이터 분석 업무까지 담당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페이스북 아일랜드 지사에서 컨텐츠마케팅+데이터 분석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는 채용공고를 낸 걸 봤고, 설마 합격하겠어 싶은 마음으로 지원했다가 덜컥 서류전형을 통과하게 됐다. 일단 리크루터랑 폰 스크리닝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그때는 영어를 훨씬 못했었고 통화 감도도 너무 안 좋다 보니 제대로 뭘 답변해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기회를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치만 이때를 계기로 내가 데이터 분석 스킬을 조금만 더 쌓고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어쩌면 해외에서도 일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 업무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회사에 어필해서, 퍼포먼스 마케팅 본부로 소속을 옮긴 후 글로벌 피자 브랜드의 퍼포먼스 마케팅 연간 대행을 하는 팀으로 재배정되었다. 페이스북과 구글 광고는 직접 내가 관리하고, 이 외에도 네이버 DA, 검색광고, 어필리에이트, 기타 버티컬 매체들은 다른 팀원들이 렙사 및 매체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매체 효율을 관리했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세상에 정말 많고 많은 매체가 있고, 이걸 분석하는 툴들도 정말 많다는 걸 처음 배웠다. 그리고 회사가 구글, 페이스북 파트너사였던 덕분에, 우리 회사 담당자로부터 다이렉트로 서포트를 받기도 하고 때 되면 컨퍼런스도 초대받고 했어서 플랫폼에서 새 기능을 내놓을 때마다 가장 먼저 그 기능들을 써보면서 배우는 게 많았었다. 피자 브랜드 말고도 비딩을 통해 따오는 새 광고주 업무들도 틈틈이 하면서 ADID/IDFA를 활용해 DSP 매체 타겟팅을 하면서 앱 트래커에 연동해 성과를 추적하는 앱 마케팅도 해볼 수 있었다. 업무시간에는 현재 광고주에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퇴근시간 이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오기 위해 제안서 작업까지 병행하다 보니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기분이었다...그렇게 소셜 본부 1년, 퍼포본부 1년을 경험하고 나니 디지털 말고 ATL까지 섭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때부터 ATL 플래닝까지 회사 내부에서 직접 하기 위해 새로 본부가 꾸려졌는데, 그 쪽으로 옮기고 싶다고 우겨서 또 본부를 바꾸게 되었다.(이쯤되면 사서 고생하는 것도 병인 것 같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미디어 플래닝 업무에만 집중을 하게 되어서 처음으로 아리아나도 써보고 TRP, CPRP 등등 ATL 관련 용어에도 익숙해졌고, 디지털부터 ATL까지 풀로 혼자서 미디어 플래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팀에서는 한 클라이언트에 집중하기보다는 한 번에 여러 광고주들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담당했었는데, 데일리 리포트와 피티 제안서를 찍어내는 기계처럼 일했었다...이 때 혹독하게 단련이 되어서 지금도 여전히 파워포인트와 엑셀은 마우스를 거의 쓰지 않는 경지에 올랐다^_ㅜ 애드쿠아에서의 시간은 워라밸 따위는 찾을 수 없었으나 광고대행사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하고 나온 것 같아서 후회가 없다. 그리고 일은 힘들었어도 정말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났어서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여전히 종종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곤 한다.

집에 일찍 가면 이상하게 느껴지던 광고회사생활..미친 야근의 기록들은 인스타에 #택시일기 태그와 함께 기록해 두었다^_ㅠ
그래도 회사생활 하면서 광고대상 시상식도 가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ㅋㅋ

3) 카카오 IX 유럽지사: Social media marketing manager

애드쿠아를 퇴사하자마자 얼떨결에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당첨이 되어서 영국으로 넘어왔고, 운 좋게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잡 오퍼를 받아 1년 3개월 동안 카카오 IX의 유럽지사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다. 사실 이 오퍼 전에 다른 소규모 영국 퍼포먼스 마케팅 에이전시로부터도 오퍼를 받았었는데, 카카오에서 제시해준 연봉이 조금 더 높았던 데다 이때까지만 해도 워홀 끝나면 다시 한국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네임밸류가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좋지 않나 싶은 생각에 선택했었다. 만약에 마케팅 분야에 계속 남아있을 거였다면 좋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결론적으로 프로그래밍 분야로 넘어온 계기가 되었다. 에이전시에 있을 땐 왜 이렇게 광고주 피드백이 느린 걸까 답답하곤 했는데, 내가 브랜드 사이드로 넘어오고 나니 내가 그동안 했던 일들은 수많은 마케팅 업무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광고비를 집행하기 이전에 제품을 기획해야 하고, 물류도 해결되어야 하고, 연예인들과 콜라보라도 하는 날엔 소속사와의 스케줄을 협의하는 것까지 신경 써서 마케팅 계획을 짜야했다. 매체면 매체, 전략이면 전략, 크리에이티브면 크리에이티브, 한 분야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에이전시의 경험과는 달리, 내 아이디어와 스킬 모든 걸 활용해서 어떤 식으로든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들을 유럽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만들 방법을 짜내는 지점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디지털, ATL 말고도 캐릭터 페어, 페스티벌 부스, 팝업스토어 운영 같은 BTL 쪽 경험들도 쌓을 수 있었다.

라전무님 모시고 간 재밌었던 만하임 출장ㅋㅋ 오른쪽은 윈터원더랜드에서 라이언 인형탈 쓰고 알바하던 시절....(다신 안 가)

이렇게 유럽지사의 유일한 마케터로서 일당백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하루 종일 엑셀만 붙잡고 씨름할 여유가 없어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여야 했다. 광고비는 얼마 쓰지도 않으면서 페이스북, 인스타, 구글, 트위터, 레딧 등 Kpop 아이돌 팬덤이 있을만한 매체는 다 직접 돌리고 있던 데다, 자사몰은 Shopify라는 별도 플랫폼을 쓰고 아마존은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나라별로 마켓플레이스가 다 분리되어있어서 매출자료, 키워드 광고 리포트 취합하는데만 해도 한나절이었다. 제품 종류가 수천개가 되고 2주 사이클로 계속 새 제품들이 입고되다 보니 제품 카테고리별, 캐릭터별, 테마별로 매출 추이를 분석하려면 그것에 맞게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도 또 하루 종일 걸렸다. 그래서 구글 빅쿼리에 모든 제품을 분석 기준에 맞게 레이블링 해 재고현황 테이블을 생성하고, 아마존, 쇼피파이 몰의 매출 데이터와 광고 채널 데이터도 별도 테이블로 저장해두고 SKU를 기준으로 모든 데이터를 매칭시켜 파이썬 코드에서 날짜만 바꾸면 총 매출 트렌드를 바로바로 뽑을 수 있도록 자동화시켰다. 이때를 계기로 처음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프로그래밍의 유용함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고, 개발자 전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혼자 이것저것 다 하느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일하던 에이전시 업무 강도에 비하면 훨씬 낮았고(일단 야근 없는 게 어디야), 내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브랜드를 키운다는 뿌듯함이 있었던 것 같다.

유럽 사람들 보라고 만들었더니 오히려 한국에서 흥한 인스타용 컨텐츠ㅋㅋ 근데 몇몇 커뮤니티에서 영어 틀렸다고 겁나 까였다 흑흑

4) Alice: FrontendFull-stack Engineer

작년 12월 둘째 주에 부트캠프를 졸업했고, 운 좋게도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자마자 첫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프론트단의 UI 요소들만 개발하면 된다고 하더니,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파이어베이스를 활용해 제품 전체를 개발해서 배포까지 하게 되었다. 이 전까지만 해도 한 번도 내가 직접 앱을 배포까지 해본 적은 없었는데 혼자서 웹 개발의 모든 사이클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게 값진 경험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CTO가 형식상으로나마 조금씩 코드 리뷰를 주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내 메시지에 답장을 안 하기 시작하더니 프로젝트 끝날 때는 내 PR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 메인 커뮤니케이션 대상은 개발자가 아닌 UX 디자이너 겸 프로젝트 매니저였는데, 그녀와 프로젝트를 하며 그동안 나는 개발자들에게 어떤 기획자였을까를 새삼 돌아보게 되더라..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선 하나 그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울 일이냐 싶겠지만 HTML 구조상 그렇게 하기는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기획자 입장에선 직관적이라 생각하는 UX 흐름도 막상 코드로 구현하려면 미친 스파게티 코드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경험하면서, 비개발자들이 직접 코드를 짜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 배경지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막상 내가 비개발 직군이었을 땐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거냐며 투덜댔던 건 비밀)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내가 뭣도 모른 채 개발자들을 엄청나게 괴롭게 하는 요청을 하진 않았었나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내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코드를 붙잡고 끙끙대는 걸 본 남편은 나중에 시니어가 되면 코드 짜는 시간보다 회의하고 다른 사람의 코드를 리뷰하는 일을 더 많이 하게 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내 코드 구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을 즐기라고 했다..말이 쉽지 이눔아ㅠㅠ


얼핏 보면 전혀 연관성 없는 일들을 주섬주섬 해온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내 커리어 여정을 바꿔 온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가 직접 만들 수 없다면 잘 알리는 방법에 대한 경험을 쌓고 싶었고, 결국은 내가 직접 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은퇴할 때쯤이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기술로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겠다'라는 모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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