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정 Apr 09. 2020

첫 길고양이 중성화(tnr)를 하다.

지난가을, 초보 캣맘 일지


길고양이 밥을 주는 소위 '캣맘'이 된 지 1년여. 처음에는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하루 한 번 밥만 챙겨주는 것만 해야지 했었는데, 여러 일을 겪으며 그런 마음으로는 캣맘을 계속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여기 사료를 두니) 고양이가 차 위로 올라가요.

고양이가 왜 이렇게 많아요. (여기 밥을 두셔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애가 고양이가 무서워서 이 길을 못지 나가요. (이 길에 밥을 두셔서 그래요.)

고양이가 주차장에 똥을 싸놔요. (앞에 밥을 두셔서 그래요.)

고양이가 새벽에 울어대요. (앞에 밥을 두셔서 그래요.)



괄호 안의 의미를 가진 말들은 결국, "밥그릇 좀 치워주세요. 밥그릇 좀 옮겨주세요."라는 뜻의 말들이다.

내가 길고양이 밥을 준다는 걸 우리 골목 사람들은 아마도 다 알고 있고, 길고양이에 관한 모든 말들은 내게 전달되거나 나에게 직접 하신다. 내가 길고양이 밥을 주니까.


아, 그냥 밥만 주고 밥자리 깨끗하게 청소하는 정도의 캣맘은 있을 수가 없는 거구나.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주변의 이야기들에 쉽게 휩쓸리고 말겠구나. 조금만 책임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구나.


한 번 그런 말을 들은 뒤로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며 매일 밥을 주러 나갔었다.


길고양이 중성화는 정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았다. 길고양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날벼락일까. 낯선 이에게 잡혀가 낯선 곳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일. 이것이 고양이를 위한 것인지 사람을 위한 것인지.


내가 중성화를 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일 년여를 지켜보니 내가 밥을 주기 시작하며 개체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점점 사람들 눈에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밥자리까지 위험해졌다. 밥을 주기 위해서는 중성화가 필요했다.


매번 수컷들은 발정이 올 때마다 괴로워하고, 암컷들은 고통 속에 임신해 아기들을 키울 안전한 곳을 찾아 헤매고 어렵게 낳아 젖 물리고 먹거리 가져다주느라 종일 고생한다. 그렇게 4-5마리를 낳아 키워도 모두 살아남지 못하고 운이 좋아야 2-3마리가 살아남는다.


같이 살기 위해서 중성화는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굳은 마음을 먹고 시청 tnr을 신청했고, 하룻밤 동안 암컷 2마리와 수컷 1마리를 포획해 중성화를 시켰다.

수컷은 하루 입원 후 방사, 암컷은 사흘 입원 후 방사되었다. 그게 작년 가을의 일이다.


부디 수술 자리가 잘 아물기를, 다른 냥이에게 밀려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암컷 고딩이와 코검이는 하루 이틀 뒤부터 바로 얼굴을 보이기 시작해 지금도 잘 지내고, 수컷 얼룩이는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밥을 먹고 가는 거면 좋겠는데...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굳은 마음을 먹고 tnr을 했지만 잘한 일인지 아닌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내가 잊지 않으려 하는 건 고딩이와 코검이는 길에서 새끼를 낳아 키우는,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을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명의 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