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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Yo Jan 31. 2018

내 인생 첫 반려동물, 병아리.

#병아리#반려동물#삐돌이#사랑#추억#이별


2003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 초등학교 앞에선 둥그런 썬 캡을 눌러쓴 아주머니가 찾아와 병아리를 파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 앞에 놓여있던 커다란 박스 안에는 암·수로 나누어진 병아리들이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구슬프게 울어댔고, 그 앞에선 수많은 또래 친구들이 병아리를 사기위해 주위를 둘러싸며 몸싸움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나 역시 그 무리들 틈에 껴서 저 귀여운 병아리들 중 한 마리를 꼭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신념으로 유심히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옆에서 같은 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한 친구가 방금 전에 산 병아리를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키울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그 친구가 손에 살며시 쥐고 있는 병아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뭐랄까. 이 녀석을 꼭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냥 이 녀석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마치 자기를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가여운 모습 때문인지. 하여튼 이 녀석을 계속 보고 있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연민의 감정 같은 것들이 막 치솟는 듯 했다. 곧바로 그 친구에게 다가가 ‘네가 못 키우면, 그 병아리 내가 데려갈게’라 말했고, 그렇게 친구에게 700원을 지불하고 병아리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하나의 고귀한 생명에 700원이란 값어치를 매기며 거래를 했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이 녀석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아낌없는 사랑을 나눠줄 자신이 있었다. 수놈에다 쉴 새 없이 삐악댄다는 이유로 이름은 ‘삐돌이’라 지었다.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 신중하게 지은 이름이니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잘 삐진다고 저렇게 지은 건 더더욱 아니니 너무 오해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좁고 답답한 실내화주머니에 갇혀있던 삐돌이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거실에 풀어놓았다. 방금 전까지 벌벌 떨던 모습은 어디가고 삐돌이는 적응을 다 마쳤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온 집안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삐돌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 가족들이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어오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삐돌이와 대면했다.    


“가만 있어봐. 저거 병아리 아니야? 저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아, 그게.. 다들 인사해. 오늘부터 우리 집 막내가 된 삐돌이야. 삐돌아, 뭐하고 있어. 너도 얼른 엄마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삐악삐악.”

“오빠, 그럼 얘가 나중에 닭이 되면, 우리 그때 치킨 먹..(퍽)”

“넌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왜 때리고 난리니.” 

“하여간 내 아들이긴 하지만, 참 대단한 녀석이다. 에휴, 그래 알겠어. 이미 데려왔으니 어쩔 수 없지 뭐. 한 번 잘 키워봐. 그 대신 앞으로 네가 끝까지 책임지고 잘 보살펴야 한다.”    


결국 부모님께선 마지못해 키우는 것을 허락해 주셨고, 삐돌이는 우리 가족의 새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삐돌이는 사고뭉치 성향이 매우 돋보이는 병아리였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거실을 휘젓고 다니며 그 작은 부

리로 엄마가 가장 아끼는 가죽 소파도 콕콕 찔러보고, 비싼 양털 카펫도 콕콕 찔러보고, 그 카펫 위에 누워서 자고 있던 아빠의 눈까지 콕콕 찌르는 바람에 집에 온 첫날부터 양계장에 직행할 뻔 했다. 더불어 알람기능까지 탑재한 녀석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온 가족을 깨우기 위해 악바리 쓰며 울어댔고, 뭐만 먹었다하면 곧바로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배설물로 자신의 영역표시를 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삐돌이가 설치한 지뢰를 밟은 아빠는 또 다시 녀석을 양계장에 보낼 거라고 하며 내게 화를 냈다.    


그래도 삐돌이가 아무리 사고뭉치라고 한들, 이와 별개로 녀석은 자신이 사랑받는 법을 정말 잘 알고 있는 동물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면 녀석은 오두방정을 떨어가며 현관까지 찾아와 나를 반겨줬고, 피곤함에 잠시 누워있을 땐 부르르 떠는 귀여운 몸짓으로 내게 밝은 웃음을 선물해주곤 했다. 아마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를 마치 자신의 어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을 마시러 주방이라도 가면 녀석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 뒤를 쫓아오느라 바빴고,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필사적으로 그 위에 올라와 껌 딱지처럼 내 품에 파고들며 잠에 들었다다. 이에 질투한 동생이 먹이를 이용하여 유혹한다고 해도, 녀석은 그것에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는 충성심을 보여줬다. 나는 그런 삐돌이를 사랑 가득한 손길로 보살폈고, 이러한 내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삐돌이 역시 언제나 활발한 모습으로 내 곁을 지켜줬다.    


허나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삐돌이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평소엔 활발하게 잘만 돌아다니던 녀석이 힘없는 모습으로 푹푹 쓰러지기 일쑤였고, 그렇게 좋아하던 찹쌀가루도 거부한 채 그 어떠한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걱정스런 마음에 엄마와 함께 병원에 찾아갔다. 삐돌이를 진찰하시던 수의사선생님께선 잠시 후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손 쓸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앞으로 나와 함께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선천적으로 약한 면역력을 타고났고, 그 상태로 낯선 환경 속에 놓여 사람의 손을 여러 번 거치다보니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거라 말했다. 사람의 손을 탔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그저 이 녀석을 사랑하는 표현에서 쓰다듬은 것뿐이지만, 이러한 행위가 오히려 삐돌이의 죽음을 앞당기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만 것이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삐돌이는 약하고 병든 병아리들만 골라서 파는 악덕 상술의 피해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렇게 나약한 생명을 돈벌이 수단에 이용한 사람과 더불어 그 거래에 동참하며 돈을 주고 삐돌이를 억지로 집으로 데려온 나 역시 명백한 가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이렇게 아팠는데 말도 못하는 이 녀석이 얼마나 답답하고 아파했을까. 의사 선생님과 엄마는 내 잘못이 아니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위로는 상당한 죄책감이 되어 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절망적인 소식만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로 삐돌이는 나날이 쇠약해져갔고, 끝내는 가만히 누워 가쁜 숨만 내쉴 정도로 임종에 가까워진 상태에 직면했다. 죽음의 경계선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힘들어하는 녀석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힘겹게 깜빡이는 눈을 바라볼 때면, 마치 ‘나는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 더 가슴이 아파왔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삐돌이는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비록 삐돌이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리 길진 않았지만, 녀석은 그 짧은 시간동안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준 동물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반려동물에 속한 동물은 개와 고양이뿐, 그 외 나머지 동물들은 그저 한낱 가축의 개념으로만 바라봤는데, 삐돌이는 이러한 나쁜 시선과 잘못된 인식을 타파해주며 평등한 조건으로 동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였다. 소위 ‘닭대가리’라는 선입견 때문에 멍청한 동물로만 인식되었던 병아리도 알고 보면 그 어떤 동물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영특하고 충성심 있는 동물이라는 것도 녀석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최근에 필기구를 사러 문방구에 들렸다가 작은 병아리 사진이 실려 있는 엽서 한 장을 발견했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부화한 것 같은 그 병아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입만 떡하니 벌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조금씩 우리 삐돌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 녀석, 보면 볼수록 우리 삐돌이랑 똑같이 생겼네.’

‘그러고 보니 우리 삐돌이는 몸을 부르르 떠는 게 정말 귀여웠지.’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항상 저런 표정을 지으며 웃곤 했는데.’    


아무리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아직까지 나는 우리 삐돌이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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