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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의 “알겠습니다”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피드백 무력화형 빌런의 행동이 가져오는 리더의 무기력함

by 파사리즘

리더의 말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단어가 있다.


“네, 알겠습니다.”


이 말은 동의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신호일 때가 많다.
리더가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아니라 ‘행동’인데, 피드백 무력화형 빌런은 그 간극을 교묘하게 활용한다.
그들은 리더의 말을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듣는 태도를 취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하며, 적절한 순간에 “좋은 말씀입니다”라고 말한다.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려줘.jpg


그러나 그날의 회의가 끝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유형의 빌런은 반항하지 않는다. 대신 ‘순응하는 척’함으로써 리더의 감시망을 벗어난다.

그들은 리더의 피드백을 일시적으로 수용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실제로는 개선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즉, “동의하되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리더는 다음 회의에서도 똑같은 피드백을 하게 되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사람은 내가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한 회사의 영업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신입 교육을 마친 지 2개월이 된 팀원 B는 항상 예의 바르고 성실했다.

보고서를 제출하면 포맷도 깔끔했고, 상사와의 관계도 원만했다.

문제는 리더의 피드백이 단 한 번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리더가 “다음엔 고객 미팅 후 24시간 내 피드백 보고를 올리세요”라고 하면,

B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다음 주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리더가 왜 그랬는지 묻자 B는 말했다.


“지난주에는 일정이 몰려서요. 이번에는 바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번’은 끝내 오지 않았다.


이 유형의 빌런은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사실상 리더의 리더십을 무력화한다.

그들은 리더의 지적을 반박하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인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리더의 권위를 서서히 침식시킨다.


리더는 어느 순간 피드백을 주는 것 자체에 피로를 느끼고,

“이제는 말해도 안 바뀌니까 그냥 두자”라는 체념에 빠진다.

그렇게 리더는 지도자에서 방관자로 이동한다.


피드백 무력화형 빌런의 특징은 “완벽한 수용의 연기”이다.

그들은 리더의 말을 즉시 인정하며,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그 인정에는 책임의 의지가 없다.
그들은 피드백을 하나의 이벤트처럼 받아들이고, 변화의 약속을 ‘시간 끌기 전략’으로 사용한다.
결국 리더는 행동 변화를 기다리며 시간을 잃고, 팀은 발전의 동력을 잃는다. 이들의 교묘한 태도는 조직의 학습 곡선을 평평하게 만든다. 리더가 피드백을 반복할수록 그 효과는 떨어진다.


팀원은 당당하고 팀장은 당황스러운 모습을 그려줘.jpg


처음에는 조언으로 들리던 말이, 나중에는 잔소리로 변한다. 이때 리더가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좌절감이다. 왜냐하면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팀원이 사실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이 좌절은 리더의 코칭 의지를 약화시키고, 결국 팀 전체의 성장률을 떨어뜨린다. 조직은 피드백이 오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체된 학습 구조 속에 머무르게 된다.


이 빌런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문제의식이 없는 문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이 리더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예의 바르고, 협조적인 팀원”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 피드백은 행동의 가이드가 아니라, 단순한 의례다. 리더가 무엇을 말하든, 일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그들은 리더가 기대하는 변화를 ‘내일로 미루는 습관’을 완벽히 내재화한 사람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첫째, 피드백을 구체적인 행동 단위로 전환해야 한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라”는 말은 추상적이다.


대신 “다음 주까지 고객사 담당자와 최소 세 번 통화하고, 통화 내용을 요약해 보고하라”처럼 행동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피드백이 구체적일수록, 변화를 회피할 여지는 줄어든다.


둘째, ‘다음 행동점검 루틴’을 시스템화해야 한다.

리더는 피드백을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행 결과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상급자가 확인하지 않으면, 하급자는 배우지 않는다”는 말처럼, 리더가 확인하지 않으면 행동은 반복되지 않는다.

피드백 무력화형 빌런은 “리더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리더는 피드백 후 일정 기간 내 ‘실행 확인 미팅’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 미팅의 목적은 질책이 아니라, “변화의 증거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다.


셋째, 피드백을 문서화하라.

대화로 끝나는 피드백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문서화는 감시가 아니라, 기억의 장치이다.

리더가 “지난 회의에서 이야기한 A안의 실행 상태를 체크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순간, 팀원은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게 되고,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피드백 기록’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리더십의 일관성을 증명하는 도구이다.


넷째, 변화를 행동이 아닌 ‘태도’로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피드백 무력화형 빌런은 태도의 변화만 연기하는 데 능하다.

그들은 “이번엔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리더의 심리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그 말은 언제나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로 끝난다. 리더는 말보다 결과, 태도보다 실행을 평가해야 한다. 리더의 눈이 ‘노력의 언어’에 머물면, 그들은 그 틈을 파고든다.


결국 이 유형의 빌런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리더의 기대를 지치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그 속에서 리더십은 서서히 침식된다. 리더가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말하는 리더”가 아니라 “확인하는 리더”로 진화해야 한다.


피드백은 전달이 아니라 추적이며, 변화는 지시가 아니라 반복 점검으로 만들어진다. 조직은 말로 바뀌지 않는다. 기록으로, 반복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바뀐다. 피드백 무력화형 빌런이 남긴 “알겠습니다”라는 한마디에 속지 않는 리더만이, 조직의 학습을 진짜 ‘행동의 문화’로 전환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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