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인생 9년차를 마주하며

그동안 버텨온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by 파사리즘

사업 9년차를 맞이했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머뭇거렸다.


9년이라는 숫자가
자랑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고,
고백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의미에서 사업 9년차를 마주한 지금 이 시점이

나는 비로소 숫자가 아닌

시간의 무게에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처음 회사를 박차고 나와 이 길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감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것의 변화를 기억한다.


1년차의 용기,

3년차의 불안,

5년차의 책임,

그리고 8년차를 지나오며 배운 비움과 채움.


그 모든 시간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9년차’라는 단어가 되었다.


그저 해보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일해보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속도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기회는 빠르게 잡아야 하고,
결정은 과감해야 하며,
망설임은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업은 나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는 얼마나 빨리 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너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9년차의 사업은
더 이상 꿈의 언어로만 말해주지 않는다.

직원이 생기고,

고객이 생기고,

책임이 생기고,

무엇보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들이 생겼다.


무엇보다

실패가 더 이상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조직의 상처가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성공보다 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확장보다 지켜야 할 것을 먼저 생각했고,
성과보다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대표자로서의 하루는 늘 결정의 연속이었지만,
그 결정은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솔직히 말하면 9년 동안

확신 속에서 달려온 날보다

의심 속에서 버틴 날이 더 많았다.


“이 방식이 맞는 걸까?”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지금 멈추는 것이 더 현명한 건 아닐까?”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대표자의 자리는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결정의 순간에는
가장 외로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남부럽지 않는 성과를 얻었다는 것보다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더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잘 되던 날보다

잘 안 되던 날이 더 또렷하게 기억나고,

계약이 성사된 순간보다 놓쳐버린 기회가 더 오래 남는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여도

속으로는 수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사업은 얼마나 크게 성공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순간에 도망치지 않았는가의 기록이라는 것을.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선택,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려 했던 순간,
잘 보이기보다 부끄럽지 않으려 애썼던 태도.

그 모든 것이 지금의 회사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사업 9년차를 마주한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 해냈다”는 말보다
“끝까지 남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아직도 불안은 있다.

여전히 미래는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무게를 아는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9년차는

성공의 증명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 잘 버텨왔다.”


이 한 문장이 다시 내일을 열게 한다.


대표자로서의 하루는 여전히 무겁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