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떠나는 배

의섬 아이들

by 지금은

‘뿌우뿌 뿌우뿌’

뱃고동 소리임이 틀림없습니다. 학교로 향하는 내 뒤를 따라 ‘뿌뿌뿌’ 울어댑니다. 뒤를 돌아볼까 하다가 바람에 뒤질까 봐 종종걸음을 합니다. 저만치 바람을 떼어놓고서야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휘리리’

옅은 안개 속으로 커다란 몸집을 내밀고 내 귓전을 울립니다. 바람이 나보다 앞서갑니다. 늦으면 안 되는데, 늦으면 안 되는데. 바람을 앞서기로 했습니다. 바람을 앞서면 얼굴이 덜 시릴 것 같습니다. 숨을 한 번 몰아쉬고 흘러내려진 배낭 한쪽의 멜빵을 어깨에 걸쳤습니다. 언덕을 향해 줄달음질합니다. 앞서가던 바람이 뒤처지면서 얼굴을 간질입니다. 바람은 뒤지지 않으려고 머리칼을 흩날리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안 돼, 내가 뭐 질 줄 알고.’

있는 힘을 다해 고갯길을 오릅니다. 앞서가던 바람이 얼굴을 차갑게 비벼대더니만 힘에 부치는지 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뿌우 하던 뱃고동 소리도 조용해졌습니다. 아마 부두를 떠나 바닷물을 헤치며 인천으로 가나봅니다. 한동안 엄마를 잃은 송아지가 어미를 찾아 보채듯 하더니만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배는 뾰로통해졌나 봅니다. 배는 안 봐도 잘 가리라 믿습니다. 눈감고도 잘 가리라 생각됩니다. 매일 다니는 길이니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물어보지 않아도 익숙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바람보다 앞서 고갯마루에 올랐습니다. ‘후 우우’ 더운 숨을 몰아쉬며 바위에 걸터앉았습니다. 머리에 김이 서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그 차가운 바위도 오늘따라 엉덩이를 시원하게 해줍니다. 옷소매로 쓰윽 이마를 문지르고는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옅은 안개를 손으로 밀어내며 선창을 바라봅니다.

‘갔겠지?’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떠나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옅은 안개가 아직도 선창 가까이서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갈까? 지금 달려가면 탈지도 모릅니다.’

다시 마음을 돌립니다. 헛수고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집니다.

‘갈까 말까?’

왠지 오늘따라 배를 타고 멀리멀리 떠나보고 싶었습니다. 아빠는 엄마는 볼 때마다 말씀하십니다.

“다음 학기에는 배도 많이 태워주고 육지로 전학시켜 주마.”

한 달에 한 번씩 오셔서는 약속하지만, 이제는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 번도 아마 스무 번도 넘을 것이니까요. 인천에서 살던 명근이는 육지 이야기만 나오면 늘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육지는 볼 것도, 탈 것도, 먹을 것도, 친구들도 많고 학교생활도 매우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육지는 정말 좋고 재미있는 것일까?’

“자식 그렇다면 뭐 하러 섬으로 전학을 왔지? 거짓말일 거야.”

중얼대지만 아마도 그럴지 모릅니다. 엉덩이가 시려옵니다. 아직 봄이 오려면 더 있어야 할까 봅니다. 다시 부두를 바라보자 쫓겨 가는 안개 사이로 햇살을 받은 바닥이 샛노랗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뿌우우’ 배는 나를 기다리다 못해 뱃고동을 한 번 길게 울리며 떠나갑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나 봅니다. 뛰어 내려갔으면 탈지도 모르는데, 사라진 뱃고동 소리가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돕니다. 햇살도 머리 위에서 맴돕니다.

‘자아식, 그래도 섬이 제일인데.’

학교를 향해 산모퉁이를 돌아 달립니다. 지각일지도 모릅니다.

‘또 늦었어.’

코앞에 사는 명근이 자식이 피식 웃으며 놀려댈지도 모릅니다. 달립니다. 달립니다. 산모퉁이를 다섯 번 돌고, 내리막길을 달려 할미꽃 피어오를 밭둑을 지났습니다.

‘자아식, 그래도 내가 배보다 빠른데.’

그러면 명근이 녀석이 말하겠지

‘인마, 나는 자동차보다 빠르다.’

‘그래도 나는 배가 더 좋다.’

“왜?”

“배는 눈이 없어도, 듣지 못해도 육지가 안 보여도 잘 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교통사고도 없으니까.”

“그래도 자동차가 더 빠른걸.”

“인마, 너 배 없으면 인천은 어떻게 갈래?”

“비행기 타고 가지?”

“미친놈, 말도 안 되는 소리.”

명근이 녀석은 또 육지 자랑할 게 틀림없습니다. 오늘만큼은 내가 이기리라는 확신이 섭니다. 왜냐하면 섬 자랑을 하려고 공책에 열 개도 더 적었으니까요. 다음 달에는 틀림없이 배를 타고 육지에 갈 겁니니다. 엄마와 손가락을 열두 번이나 걸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