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낙서의 쓸모 20230529
“야, 인마. 네 얼굴에 낙서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언젠가 한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그럴 수도 있나 하는 마음입니다. 시대의 정서적인 흐름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고 보니 책에 낙서한 것을 가지고 꾸짖어야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다 보니 공공의 책이 아니라면 책에 밑줄을 긋고 첨삭을 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낙서 아닌 낙서를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책을 좀 지저분하게 다루었다고 해서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책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앞선 독서자의 생각이나 표현을 참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참고서의 경우 이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종이가 귀하니 책 또한 귀했습니다. 학년 초에 받은 교과서가 책의 전부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이 볼 수 있는 도서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공책이 있지만 나라나 개인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니 공책마저 살 수 없는 학생은 마분지라는 큰 종이를 잘라 엮어 사용했습니다. 다 쓴 후에는 연필 글씨 위에 펜이나 붓을 이용하여 재사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종이를 귀하게 여기고 그만큼 책은 더 후한 대접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시대에는 책에 낙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사십 대까지만 해도 책에 낙서하는 것을 금물로 여겼습니다. 혹여 실수로 책에 연필 자국이 난다거나 뭐라도 묻게 되면 지우개를 찾아 깨끗이 지우곤 했습니다. 이런 내 습관이 변한 것은 독서에 관한 강의를 들은 후부터입니다.
윤독하며 느낌을 표현하는 시간에 강사가 말했습니다.
“감명 깊은 장면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줄을 그어보세요.”
느낌을 한 줄로 간단히 기입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이 깨끗한 지면을 어지럽힌다는 게 왠지 불편합니다. 하지만 줄 긋기와 생각이 여백을 메웠습니다. 감히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이 전에는 중요하다 싶으면 책의 여백 대신 공책이나 메모지에 적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입니다. 낙서의 장은 집의 벽이나 담벼락입니다. 물론 꾸중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혼이 나도 낙서하는 즐거움은 있습니다. 뭔가 뜻 모를 내용이지만 손이 움직이고 마음이 집중되는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세계입니다. 시절을 되돌아보면 백지는 일종의 놀이터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는 이제야 모든 종이가 나를 반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펜과 종이가 있는 순간은 지루함이 없어집니다. 그동안 갈 곳을 잃고 책장의 한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해 지난 큰 수첩들을 꺼냈습니다. 철없는 아이처럼 무심코 그어대는 선이 무질서하기는 해도 그림이 되고 글씨가 됩니다. 나는 어느새 창조주가 되는 느낌입니다. 책을 읽다가도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장면이 있으면 내 속내를 간단한 단어로 표시하고 작은 그림으로도 여백을 채웁니다.
무심코 시작한 낙서의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어느새 책상이나 거실의 탁자에는 지나간 수첩이나 이면지가 펜과 함께 자리했습니다. 놀이 기구로 종이컵도 참가했습니다. 평생학습관에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날이면 종이컵이 내 손에 들려 집으로 옵니다. 쉬는 시간이나 막간을 이용하여 커피나 음료수를 마신 후에는 겉면에 낙서합니다. 강의를 듣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이나 장면이 있을 때, 강의 자체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면 은근슬쩍 눈을 피해 낙서를 합니다. 글씨를 겹쳐 쓰기도 하고 ‘졸라맨’처럼 간단한 스케치를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참고하고 싶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모양을 따라 가위로 오리다 보니 부채꼴의 종이가 되었습니다. 그 지면에는 다양한 인물이나 내 마음의 글씨들이 좁은 곳에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말이 되자 모아둔 것들을 꺼내 늘어놓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뭔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내가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색을 입히면 좋은 작품이 되겠네.”
“그렇게 보여?”
슬그머니 비닐 파일을 가져와 하나씩 끼웠습니다. 삼십여 개의 종이컵이 내 생각을 펼쳐놓았습니다. 순간의 마음들이 살아납니다.
공책에 시작한 낙서가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펜을 들면 무언가 괜찮은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이 찾아왔습니다. 내 그림 실력은 남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낙서라는 게 좋지 않다는 인식은 펜을 비롯한 도구들을 드는 시간을 은근슬쩍 막았습니다. 하지만 펜을 드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낙서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한때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남다른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건 그림도 아니야, 아이들이나 그리는 그림이지! 저 정도면 나도 충분히 그릴 수 있어. 낙서란 말을 말고는 더 평가할 일이 있을까.’
피카소는 다시 어린이가 되기 위해 40년이 걸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은 낙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낙서의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수첩을 뒤적입니다. 그림책 한 권은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의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멋져요. 편집하고 조금만 다듬으면…….”
그림책 강사의 말에 슬그머니 미소를 흘립니다. 즐거움을 하나 더 찾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