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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27. 술 권하는 나 202107010

by 지금은

막걸리를 두 병이나 샀습니다. 내일은 점포가 쉬는 날이라 에누리한다기에 상술에 넘어갔습니다. 상술이라기보다 내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갑자기 며칠 전부터 술 생각이 머리를 점령했습니다.


‘맥주, 소주, 막걸리, 샴페인, 포도주…….’


마구 머리를 스쳐 갑니다. 생각뿐입니다. 나는 본래 술에 대해서 흥미가 없습니다. 어쩌나, 술을 먹을 일이 있으면 걱정부터 앞섭니다. 이유는 술에는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술고래 소리를 듣는 동료가 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집안에 술이 있으면 나 스스로 감추는 습성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몇 년이 가도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랑할 건 못 되지만 우리 집에 온 지 사오십 년 된 술도 있습니다. 상표가 누렇게 변했습니다.


올봄에는 아들의 친구 모임이 있다기에 하나를 시집보냈습니다. 귀한 술이라면서도 불과 몇 분 사이에 동이 났다는군요. 애주가가 있었나 봅니다.


오늘을 빼고는 내가 혼자 술을 먹기 위해 샀다는 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처음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입니다. 나는 가끔 비 오는 날이면 아내에게 농담합니다.


“막걸리 생각이 나네. 안주에는 빈대떡이 최고인데.”


술은 없어도 빈대떡 한 자박 놓고 구중중한 날을 즐깁니다.


지금은 빈대떡 이야기를 꺼낼 수 없습니다. 우선 비가 오지 않기도 하지만, 무더위와 주방의 더운 열기에 싸이는 게 싫습니다. 식탁 위에 나는 한 잔, 아내는 두 모금입니다. 안주 없습니다.


‘모내기, 벼 베기, 타작하기, 선산의 벌초…….’


막걸리는 아무래도 땀을 흘려야 꿀맛입니다. 농주의 의미입니다.


한 컵에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뜁니다. 오늘의 소원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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