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무기 20210716
군대 체질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선임입니다. 다시 입대 영장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 중 대부분은 근무지가 있는 곳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말한 때가 있습니다.
군대 체질이라고, 특이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본즉슨 휴가의 대가랍니다. 뭘 해도 포상 휴가를 받았답니다. 심심하면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부정한 방법은 아닙니다. 나중에는 휴가를 나가는 것이 귀찮았습니다.
그는 사격, 태권도, 격구, 작품 경진대회, 표어 짓기 등 다양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아마 부대원들의 구성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더구나 이 사람은 편지 쓰기의 달인이었나 봅니다. 아니 연애 박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애인 때문에 고민하는 선임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었습니다. 좋은 소문이 퍼지자, 선임들이 연애편지의 대필을 청했습니다. 한동안 고달팠습니다. 사랑하지도 않은 낯 모를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노동입니다. 더구나 이 선임 저 선임의 여자를 바꿔가며 마음을 전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나은 씨…….’
신발을 거꾸로 신은 애인이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그리운 미영이…….’
면회를 왔습니다. 특등사수가 됐습니다. 엎드려 쏴, 쪼그려 쏴, 서서 쏴, 백발백중입니다. 몇 번의 지원사격에 애인들은 보이지 않는 끈에 줄줄이 묶여왔습니다.
내가 섬에 잠시 근무하던 시절입니다. 삼 무인 벽지나 다름없는 외딴섬입니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이야기하면 유배지나 다름없습니다. 목욕탕도, 이발소도, 가게도 없습니다. 생필품을 주로 육지에서 구입해야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배가 오갔습니다. 나에게는 큰 배낭은 필수품입니다.
동료 중 한 명은 말주변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문화시설도 없고 자연환경도 보잘것없는 이 섬에 그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그들과 동네 사람들은 잘 어울렸습니다. 마치 친구나 친척이라도 된 양 친근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는 섬을 떠나면서 제대군인과 같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섬을 나가면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너무 친근해서 지루했을까? 말뿐입니다. 그 후로도 그는 친구들과 섬을 자주 찾아왔습니다. 그만이 섬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무엇이 있나 봅니다.
나는 때 늦은 감이 있지만 십여 년 전부터 책을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 글도 쓰고 있습니다.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특별한 재주가 없다 보니 그 하나쯤은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일찍 독서와 글쓰기에 눈을 떴더라면 군 생활이 조금이라도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음, 내가 연애편지 대필을 더 잘했을지도.’
하지만 늦을 때란 없다고 합니다. 안 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듣기 좋은 말일지는 모르지만, 그냥 해봐야 합니다. 연애편지 대필은 늦었습니다. 해도 좋은 일에 축사를 써줄 일이 생길지 누가 압니까.
앳된 아가씨가 수줍은 얼굴로 다가와 속삭였습니다.
“할아버지, 급해서 그러는데 연애편지 한 장 써주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쓰면 좋겠는데.”
나는 편지를 쓰기에 앞서 아가씨와 연애하고 있습니다. 그거 알고 있지, 혼자 생각이란 거.
생각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