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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45. 이별과 탄생 20210717

by 지금은 Dec 01. 2024

언젠가는 떠납니다. 진리입니다. 나와 사십여 년이나 함께 했던 자전거를 떠나보냈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것입니다. 내 발 노릇을 충실히 해서 나름대로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닦고 조이고 기름 치기를 반복했습니다. 늘 청춘 같은 외모를 잃지 않았습니다. 세월에는 약이 없다더니만 연륜을 더해지다 보니 보이지 않는 곳이 서서히 낡아졌습니다. 뼈대에 이상이 있어 이별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차지했던 공간을 지나치다 보면 한동안 허상이 보였습니다.


오래전이야기입니다. 이십여 년 가까이 키워온 군자란이 죽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겉모양이 이상합니다. 요리조리 살피다가 줄기를 살며시 들어 올렸습니다. 줄기가 힘없이 따라 올라왔습니다. 뿌리와 줄기가 쉽게 분리되었습니다. 뿌리 윗부분에 흰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아차, 물을 너무 많이 준 거야.’


장마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난을 잘 키운다는 말을 잊었습니다. 비가 집안으로 들어차자 베란다의 문을 꼭꼭 닫았습니다. 기온이 높고 습도도 높은데 공기의 순환마저 좋지 않으니 일어난 결과입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그 시절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한 화초였습니다.


“물을 너무 자주 주지 마세요.”


며칠 후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방 안이 환해졌습니다. 집을 찾아오는 사람마다 꽃을 들여다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군자란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선물한 분을 생각해서라도, 아니 어느 꽃보다도 예쁘니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에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책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꽃을 늘리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꽃이 지고 난 후 씨를 받아 번식시켰습니다. 뿌리 사이로 내민 새싹이 가지를 치자 포기나누기도 했습니다. 싱싱한 어린것들을 분갈이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 집은 햇빛이 사철 찾아와 해를 좋아하는 식물들이 꽃을 연이어 피웠습니다. 제라늄, 군자란, 사량초, 만년초…….


이사를 하고 난 후부터입니다. 꽃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향이 정반대입니다. 베란다의 창문도 작습니다.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군자란과의 이별 후입니다. 전에 살던 집에서 화분 몇 개만 가져온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장마가 물러갔습니다. 베란다의 창문을 열었습니다. 갇혀있던 공기를 몰아내고 바닥도 청소해야 합니다.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다 보니 빈 화분에 애플민트 한 줄기가 쏘옥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넓은 자리를 혼자 독차지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들의 짓입니다. 빈 화분이 허전해 보여서 옆 화분에서 가지 하나를 옮겼답니다. 말을 들어보니 이건 ‘꺾꽂이’입니다. 화초를 구경하다 몸에 스쳐 가지가 부러진 것입니다. 옆을 보면서 잘 자라기 경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만남과 이별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소멸과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들어온다는 속담처럼 그 자리에는 누군가 대신합니다.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어느새 가을이 여름의 눈치를 봅니다.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파랗습니다. 뭉게구름이 돋보입니다. 고추잠자리가 오르면 그 구름은 자리를 양보할 것입니다. 다른 무엇인가가 그 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탄생과 소멸의 반복입니다.


내 삶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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