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야생화 20210909
산책하노라면 공원이나 한적한 길가의 둑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이 나를 반겼습니다. 꽃양귀비, 금계국, 로벨리아 등 원색의 화초들이 풍성합니다. 이들이 어느 날 자취를 감췄습니다. 예초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밖에 나가면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공원의 언덕바지를 따라 수놓은 풀도 꽃도 모두 잘렸습니다. 작년과 올해는 정도가 더 심합니다.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들이 보기는 좋은데 자연미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추석이 가까워져 옵니다. 시골은 지금쯤 벌초를 하느라 바쁘겠다고 짐작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상을 섬기는 문화가 있어 무덤을 잘 정돈하고 차례를 지냅니다. 우리 가족과 친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예년처럼 사촌 형제들과 모여 벌초하기로 했습니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산골짜기가 기계 소리와 형제들의 이야기로 시끄러울 것입니다. 예전에는 낫으로 벌초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효율성과 편리함 때문입니다.
벌초가 끝나면 골짜기와 등성이에 널려있는 야생화를 한 다발 꺾어 조상님 앞에 놓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부모님, 부모님도 꽃을 좋아하셨지요.’
‘여부가 있겠나.’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일까요. 정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가 갑자기 늘어났습니다. 공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에 비해 두서너 배 이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원은 늘 이 사람들의 일손을 기다립니다. 공원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원에 매달린다는 말이 옳습니다. 봄부터 땅을 파고 흙을 고릅니다. 꽃을 심습니다. 복잡하게 이곳저곳에 가공물을 세웁니다.
‘뭐야, 있는 그대로 모습이 좋겠구먼.’
인공구조물로 인해 공원이 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모습으로 변한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예초기를 수시로 돌립니다. 풀이 자랄 틈이 없습니다. 부지런한 스님의 머리칼 같습니다. 풀꽃들이 자연스레 얼굴을 내밀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나무들만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습니다.
나는 저절로 피어나는 꽃들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대신 그들은 화원에서 가꾸어진 꽃들을 가져와 여기저기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큰 화분에도 올망졸망 심었습니다. 외래종이 많습니다. 색색의 꽃들이 눈에 확 들어와 좋기는 하지만 자연미가 부족한 것이 흠입니다. 나는 민들레, 별꽃, 다음으로 이어지는 클로버 같은 야생화를 더 좋아합니다. 한때는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구름만큼이나 화면에 홀려 민들레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왠지 모르게 갓난아기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피고 지는 민들레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홀씨를 날리는 재미도 있습니다. 손바닥에 올리고 입김을 크게 내뱉습니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양 하늘을 향해 떠오릅니다. 그들은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신이 났습니다.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클로버가 꽃을 피우기 전에는 무엇을 했을까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에 네 잎을 찾는 일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과 달리 행운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손 편지를 쓸 일도 없을 것 같은데도 미련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립니다. 펜팔이라도 다시 해야 할까요. 클로버꽃으로는 무엇을 할까요. 나는 아직도 마음만큼은 어린이인가 봅니다. 꽃시계를 만들어 손목에 묶었습니다. 윗집 아이와의 소꿉장난이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뭘 안다고 꽃반지, 목걸이, 화환을 만들어 서로에게 건네며 장래를 약속했습니다. 손가락도 걸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아프다고 할 때까지 손도장도 힘 있게 찍었습니다.
‘그 애는 지금쯤 그 어디서 그 무얼 하고 있는지……’
그 애 이름은 잊었지만 시인지 노래 가사인지 그럴듯한 생각을 떠올립니다.
그때의 꽃시계, 꽃반지, 꽃목걸이는 정확히 말하면 클로버가 아니라 개울 건너 논바닥을 뒤덮은 자운영이었습니다. 자운영꽃이 더 예쁩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 꽃은 빨간 색깔입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지금 내 손목의 흰 꽃은 청순을 의미하니 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요즘 우리 집 근처 수로의 넓은 공터를 산책합니다. 갈대들이 마구마구 자라 아까시나무와 어울려 숲을 이루었습니다. 그 갈대밭에는 야생화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합니다. 화판의 여백을 살리듯 군데군데 좀씀바귀, 고들빼기, 구절초, 쑥부쟁이, 무릇 등이 자라고 있습니다. 공터의 풀들이 싹뚝싹뚝 잘리지 않는 게 다행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겨울이 지나도록 그들은 그대로이기를 바랍니다. 명을 다한 풀들이 자양분이 되어 다음에도 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가을비에 들국화가 힘을 얻었습니다. 모습을 감추고 있던 그들이 갈대와 간격을 두고 나에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가을 햇살에 좁쌀알만 한 꽃망울을 키워갑니다. 서리가 내릴 즈음이면, 서리가 내리면 그들은 수줍은 모습으로 나를 향해 노란 얼굴을 드러낼 게 틀림없습니다. 밤새 서릿발로 화장을 한 채 이른 아침 눈을 반짝일 것입니다. 눈 맞춤을 시기하는 꿀벌들이 나에게 겁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처럼 얼음땡을 하면 됩니다.
다음엔 겨울꽃도 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