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은 Dec 21. 2024

☏2021

18. 벌초 20200911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 기일입니다. 벌초가 끝나고 산소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늘 저희를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우리 형제와 사촌들이 날짜를 잡아 이곳에 함께 모입니다. 초기 선산이 마련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잔치 분위기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듭니다. 숙부, 숙모님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돈독함이 다소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형님까지 병환으로 자리에 눕다 보니 어느덧 내가 연장자가 되었습니다.


작년과 올해는 그 숫자 대폭 줄었습니다. 남자들만 모였습니다. 가족을 대표해서 한 사람씩 모두 서너 명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처음에는 다소 어색한 분위기입니다. 벌초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분위기가 풀리지만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모두 일에 힘에 부칩니다. 자식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고 늙어가는 형제들만 모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얼마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나이가 적은 두 동생은 예초기를 돌리고 나는 잘린 풀들을 갈퀴로 긁어보아 한 아름씩 가슴에 안아 산소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버립니다. 또 다른 동생은 산소에 있는 작은 꽃나무를 다듬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내가 산소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가까운 곳에 살기도 하지만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자 일찍 일을 서두릅니다. 나도 동생들 못지않게 일찍 참석하고 싶지만 마음 같지 않습니다. 먼 곳에 살다 보니 새벽 다섯 시에 첫차를 타고 가도 아홉 시 무렵에나 도착을 합니다. 전철을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합니다.


벌초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지나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장을 하기 전 할아버지, 아버지 산소에 얽힌 추억을 말합니다. 추석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가을의 풍성함입니다. 오늘은 산골짜기의 열매와 버섯입니다. 산소 주변에 하나둘 보이던 으름덩굴이 해마다 숫자를 불리더니 올해는 큰 나무 위를 뒤덮었습니다.


어린 시절입니다. 할아버지 성묘를 하러 갔을 때는 주위에 으름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고 말하자, 사촌 동생은 한 수 더 떴습니다. 큰 말림 옆 골짜기 큰아버지 산소 앞에는 으름이 많아 지게에 짊어지고 왔었다고 합니다. 산소를 이장하고 그 후로는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으니 믿기로 했습니다.


“형님 안 보여요? 여기…….”


한 동생이 손가락으로 으름을 가리킵니다. 금방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자, 손가락을 더 가까이합니다. 가운뎃손가락 길이만 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직 익으려면 멀었습니다. 누런 색깔로 변하려면 시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눈이 줄기를 따라 옮겨가자 또 다른 열매들이 보입니다. 산림녹화가 잘된 덕분입니다. 전에는 우리 고장의 산도 벌거숭이였습니다. 봄이면 민둥산에 진달래가 불을 밝히듯 온 산을 물들였는데 큰 나무들에 치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큰 나무들에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전날 간식으로 먹을거리라도 준비했어야 하는데 집이 멀다는 이유로 산소에 빨리 다다를 생각만 했습니다. 해마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수가 있었는데 올해는 맨송맨송합니다.


나는 선산을 잘 찾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이 고작입니다. 자주 찾아가야 하지만 마음 같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으니 특별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다릅니다. 건강하셨는데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의 나이 환갑을 조금 넘겼을 뿐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슬퍼집니다. 힘들게 자식들을 뒷바라지하여 몸과 마음이 편해질 시기가 되었는데 하느님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나 봅니다. 생각은 하루에도 여러 번 선산으로 향하지만, 몸은 이를 외면합니다. 대신 잠에서 깨어날 때, 잠자리에 들 때마다 어머니께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살가운 아들은 못되니 잠시 화살기도일 뿐입니다.


“형님, 가기 전에 앞에 보이는 산에 올라가 보시지요.”


몇 년 전에 쉬는 틈을 타서 그곳에 가본 일이 있습니다. 버섯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생각처럼 싸리버섯이 등성이에 널려 있었습니다. 이미 사그라진 것들이 있고 싱싱한 것들도 있습니다. 꽤 많이 따서 나눴습니다. 그 후로 해마다 몇 차례 가봤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날씨가 버섯에 맞지 않는 조건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올해는 가기가 싫어지네.”


나무와 풀들이 우거져 옛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산이 전보다 더 음습해 보입니다. 그보다 일을 끝낸 동생들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힘든 일을 했으니 허기질 것 같습니다.


“그만 가지, 가까운 음식점이 어디에 있나? 점심은 내가 내는 거야.”


“제가 내야지요. 한 번도 기회가 없었는데.”


“아니야, 형이니까 내가 내야 해.”


“뭐, 형님만 내라는 법이 있나 뭐.”


식사 후 각자 헤어져야 합니다. 예초기를 빌려온 막내에게 값을 물었습니다. 대여비를 주고 싶었습니다. 극구 사양합니다. 마음에 걸려 오는 중에 다시 전화했습니다. 와서 제일 힘든 일을 했는데 자네가 대여비까지 책임져야겠느냐고 했습니다. 결국 동생의 고집에 지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더 멉니다.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마냥 가기로 했습니다. 버스 대신 전동차를 탔습니다. 전철 안은 한가합니다. 노약자석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나에게 지루함을 달래는 약은 책입니다. 책을 펼치자, 햇살이 훼방을 놓습니다. 건너편 자리로 피했습니다. 책 속에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알퐁스 도데의 <별>과 특히 늦은 밤 성묫길 귀갓길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 그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눕니다. 산골짜기입니다. 개울물을 따라 별이 내렸습니다. 여울과 함께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눕니다. 좀 피곤했나 봅니다. 눈이 깜빡하는 사이 나도 그들을 따라 길을 걷고 있습니다. 등짐 속에는 낫과 예초기 대신 버섯과 으름, 별이 한가득 담겼습니다. 집이 가까워져 옵니다. 추석이 익어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