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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Jan 01. 2021

셀프 웨딩 준비하기 - 식장 꾸미기(실행)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세븐 스프링스 목동점은 평소에는 일반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식장처럼 미리 꾸며놓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혼식 전날 밤 영업이 끝난 뒤! 그리고 결혼식 당일 아침부터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까지 3~4시간 정도뿐이었다. 이 제한 시간 내에 우리는 미리 준비한 이 미션들을 모두 수행해야 했다. 


결혼식 전 날 밤 10시쯤인가, 모든 손님이 퇴장했을 무렵, 나와 C 그리고 인천에서 오신 아버님이 그곳에 모였다. 아버님의 손에는 전동드릴과 각목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이것들은 조금 있으면 포토월과 예식 배경이 될 부품들이었다. 그랬다. 철없는 며느리의 로망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시댁에서 물심양면 도움을 주셨다. 



D-1 두근두근. 이 각목은 곧 예식 배경과 포토월이 됩니다. ⓒ과거 사진첩



아무리 간단하게 꾸민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한 포토월과 예식 배경은 어떻게든 설치를 해야 했다. 넓은 공간에서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은 긴~ 각목을 조립하여 기둥을 세우고, 그 아래 천을 늘어 뜨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동대문 천 시장을 탐방한 끝에, 인터넷에서 마음에 쏙 드는 천을 잔뜩 구입했다.(발품 소용 없...) 그리고 악기를 만드는 장인이신 아버님께 부탁드렸다.(사고는 자식이 치고, 뒷수습은 부모님이 하는...) 아버님은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각목을 구하고, 조립하고, 해체하는 것까지 준비하셨다. 심지어 포토월에 쓰일 천은 미리 미싱으로 박음질하여 딱 사이즈에 맞춰 준비해주셨다. 아마 아버님이 없었으면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계획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 압도적 감사!!!) 


세븐 스프링스의 인테리어에 각목을 연결하고, 하얀 천을 길게 덧대었다. 각목에 천을 묶는 데 생각보다 팔이 많이 아파서 당황스러웠다. 8할은 아버님께서 묶어주심...
포토월 세팅. 구겨져 있는 천을 펴기 위해 분무기까지 준비하셨다. ⓒ과거 사진첩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동안 두 종류를 뚝딱뚝딱 만들었던 것 같다. 아버님은 완벽하게 숙련된 솜씨로 순식간에 조립하셨다. 예식 배경은 기존에 있는 세븐 스프링스 인테리어를 활용하여 각목을 덧대는 형식으로 진행했고, 포토월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커다란 각목을 조립하여 세우고, 그 사이에 천을 끼워 정말 거대한 벽처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C는 그저 보조일 뿐이었다. 


예식 배경과 포토월을 설치하고, 본식이 진행될 공간에는 테이블을 모두 치우고 의자를 세팅해 놓았다. 다음 날 오면 바로 전시회 준비를 하고, 화분을 올려놓고, 마이크 및 빔 프로젝터 설치 등 세부적인 부분을 세팅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한 것이다.



최대한 많은 하객들이 앉아서 볼 수 있도록 테이블을 치우고, 의자만 세팅 ⓒ과거 사진첩


이때, 나의 아버지와 함께 올까 했다가, 울산에서부터 장거리 운전을 하셨기에 피곤하실 것 같아 집에서 쉬라고 했었는데 이게 함정이었다. 서울 지리를 모르는 아버지가 결혼식 날에야 이 곳에 처음 오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직접 운전해서. 한 번이라도 와 본 것과 처음 오는 것은 천지차이이거늘. 심지어 화장도 나와 부모님이 따로 받아서 옆에서 에스코트해 줄 사람도 없었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이 날 밤, 나는 거대하게 세워진 포토월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넘었고, 씻고 정리하고, 그 새벽에 혼인 서약서를 쓰고, 한 시간쯤 잤을까. 신부 화장을 첫 타임으로 예약하였기에, 아마 6시 혹은 그 전쯤이었던 예약 시간을 맞추려고 비몽사몽 일어나 나간 것 같다. 신부 화장에 걸린 시간은 3시간 정도. 신랑은 30분도 안 되어서 끝난 것 같은데, 나는 좀 더 좀 더 하다 보니 예상보다도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그렇게 9시쯤에 또 부지런히 목동을 향해 갔다. 예식은 12시 반. 지금부터는 진정한 시간 싸움이었다.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안내문을 붙이면서 올라갔다. 41층에 도착해서는 모든 짐들을 펼치고 사진을 세팅할 준비를 했다. 미리 일찍 와달라고 부탁했던 동아리 선, 후배, 동기,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나는 잔뜩 프린트해둔 종이를 건네며 이걸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 붙이고, 모든 테이블 위해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내 화분도 도착했다고 하여, C와 후배들은 이를 가지러 내려갔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캄파눌라' 꽃 화분 60개와 버진로드를 장식할 '율마' 화분 20개를 갖고 올라왔다. 


모든 테이블마다 미니 꽃화분과 설명문구를, 버진로드에는 율마 화분을 ⓒ과거 사진첩



일찌감치 와서 도와준 동아리 선,후배, 동기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정말 감사하다. ⓒ과거 사진첩



몇몇 친구들은 테이블마다 안내문, 꽃화분을 올려놓았고, 몇몇은 벽에 사진을 붙이고, 액자를 기둥에 걸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러 와주셔서 생각보다 시간이 여유로운 듯했다. 일찌감치 세팅을 끝내고 다들 그곳에서 사진 찍고 놀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셀프로 '꾸미는' 세팅이 끝나고, 화환을 배치하고, 스피커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스크린을 올리고, 노트북을 빔과 연결하여 영상 재생을 해보는 등의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지인들 덕분에 무사히 잘 꾸밀 수 있었던 사진전. 이곳에 덕담상자를 두었다. ⓒ과거 사진첩



아마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11시 반쯤에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었는데, 그보다 조금 일찍 손님들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님의 고향인 대전과 부모님께서 거주하고 있는 울산에서 각각 대절 버스가 출발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나는 사전에 미리 도착했어도 11시 반 이후에 손님을 올려 달라고 요청했었는데 어디선가 그 요청이 누락된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의 친척들이, 부모님의 지인들이 막 도착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 부모님이 없다!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멘탈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일단 부랴부랴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 내내 얼굴은 신부 화장에 옷은 트레이닝복을 입고서 일하던 상태였다. 미리 준비한 웨딩 구두와 웨딩드레스로 갈아 입고, 옆에서 C는 전날 저녁 세팅해 온 턱시도를 꺼냈는데, 뭐지? 입었는데 팔이 짧다. 작다. 이 정신없는 찰나에 확인한 짧은 팔 턱시도라니. 당황스러웠다. 얼른 손님을 맞이하러 가야 하는데, 왜 이런 게 다 걸리고 난리람. 순간적인 판단으로, 접어서 박음질해 올린 소맷단을 뜯었다. 셔츠 손목이 좀 보이지만, 뭐 디테일하게 보고 있을 사람은 없을 테니 일단 이렇게 대처하자 싶었다. 


그렇게 나가 정신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자니, 아직 제대로 세팅하지 못한 것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예식이 열리는 건물이 아닌, 공영 주차장에 주차하신 분들을 위해 주차 티켓을 드려야 하는데 (나중에 이 주차 티켓을 모아 사후 정산하기로 주차장 측과 얘기를 미리 했었다.) C가 준비해서 갖고 있던 그 티켓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단다! 게다가 버진 로드를 꾸몄던 율마 화분은 꽤 커서, 갖고 가려면 손잡이 있는 비닐 등이 필요한데 그 비닐도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손님이 몰려드는데 축의금 테이블이 세팅되지 않았다!


이것은 결혼식인가 난장판인가. 우아앙.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준비한 내 일생일대의 행사를 이렇게 보낼 수야 없지. 일단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은 모두 웃으면서 맞이했다. 그리고 모두 일행마다 포토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미 구성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안내도 많이 해주었고, 손님들은 낯선 풍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적응을 잘하셨다. 그리고 나는 틈틈이 부모님께 연락했다. 대체 언제 도착하시려나?



이미 세 번째로 자식의 결혼을 진행하는 C의 부모님은 능수능란하셨다. 시간 맞춰 도착하셔서 손님맞이 인사도 하시고, 익숙한 듯 외삼촌께서 축의금 테이블을 진두지휘하고 계셨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출장 화장이 늦게 도착하여 그만큼 출발 시간이 늦어진 데다가, 토요일 점심에 홍대를 거쳐 일방통행 지옥인 목동으로 오는 길이라니! 게다가 구닥다리 내비는 길을 빙빙 돌렸다. 아버지는 정말 진땀을 흘리셨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어제라도 미리 아버지를 모시고 오지 않은 내 탓이다. 하나뿐인 딸의 한 번뿐인 결혼식에 어찌 이런 일이 T-T


그래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12시 20분! 드디어 부모님께서 예식장에 도착하셨고, 신랑 신부보다 더 큰 환호 세례를 받았다. 휴, 하마터면 신부 부모님이 없는 상태에서 예식 시간이 될 뻔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막바지 손님맞이를 마음 편히 하였다. 어차피 통째로 빌린 공간이기에 우리 예식이 조금 늦어진다고, 별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편한 마음으로 부모님께서 천천히 손님맞이를 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가졌다. 


그렇게 12시 반이 조금 넘어갈 무렵, 포토월 앞에서 손님을 맞이했던 C와 나는 이제 버진 로드 앞에 서서 결혼식을 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부랴부랴 달려온 친구의 전언. 스피커가 나오지 않아!


이리저리 대응 방법에 대해 C가 얘기했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게 C는 몸은 포토월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정신은 사회자 근처의 스피커에 가 있었다. 십여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이렇게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 C가 스피커 앞으로 갔다. 이미 결혼식은 좀 늦어졌다. 아하하하하. 왜 늦어지는지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다. 왜냐면 세븐 스프링스 목동점은 전체 방송을 하는 기능이 없다고 했고, 그래서 우리가 굳이 마이크와 스피커를 빌려온 건데, 그 스피커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잠시 결혼식이 지연된다고 식사가 필요하신 분은 언제든지 드시라며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우와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가 소리 질러요) 다행인 건 C가 가자마자 스피커는 바로 고쳐졌다는 사실이다. 버튼 하나만 연결하면 되는 걸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쨌든 덕분에 드디어 우리의 결혼식은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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