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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by 여름나무

후두룩 새가 날아올랐다

너무나 고요했기에

어디선가 꽃잎 지는 소리

총성처럼 울려 퍼졌을 것이다


종로 5가, 버젓이 길가를 차지했던 노인

그림자만 몇 해 걸쳐 놓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굴레를 벗지 못한 새는

용케, 핸드폰 울림을 뽑아 물고


세 번째 여자의 두 번째 남자

그가 오늘,

되돌아올 수 없는 어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형체도 없는 슬픔이 뒤따랐다

그가 보냈던 유배지에서

한 달 하고도 열흘 가까이 묶은 적이 있었다

먹고 자고 걷기를 목숨줄처럼 매달렸던 사내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겠지만

죽으리라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너무 가까이

생과의 이별이 손끝으로 다가선다


몇 해 전 그를 만났다

혜화역 어디쯤

그의 설움만큼이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아

가파른 언덕 끝에 자리한 재개발 사무실

국밥집 뚝배기에다 몸뚱이를 내어주고도

지폐 몇 장 입에 물고 쟁반 위에 올라앉아 히죽이 던

돼지머리 같았던 사내

이제 그는 그 가파름 끝에서

늙지 않는 기억 속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해가 가을 속으로 떨어진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익숙지 않은 거리에 숨어들고 싶다

어디쯤 가면 용케,

비실비실 웃어 볼만한 점괘 한 점

뽑아 물 수 있을까,

종로 5가 뒷골목엔 여전히

살덩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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