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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다 봄

by 여름나무

더디다 봄


한낮부터 바람에 취해 꽃들이 휘청 거렸다

또 한 번의 봄이 찾아왔다고

들썩 들썩 저렇게 요란을 떠는 것이다


하긴, 긴 겨울 차디찬 땅끝 아래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던 봄이었을까?

그리 차지한 봄인데,

무심히 지나치는 내가 꽤나 섭섭했을 것이다

뒤따르는 따가움이 뒤통수를 친다


미안함이 무딤을 세웠다

잔치가 벌어진 마을은 흥에 겨웠고

취하지 못한, 눈 내리는 마을에 사는 난

사정이 있어 멈춰 선 시간을 터 놓지 못한다


섣부르게 봄으로 나선 적이 있었다

미친 바람처럼

그러나 지금 난, 눈 내리는 마을에 산다


출산이 멀지 않은 만삭의 나다

햇볕 한 술 한 술 뜨며

드나드는 햇볕과 바람에 오늘을 살찌우는,

꽃 핀 자리보다 아름다운 꽃봉오리

품고 있다


그러니 취한 봄이여

오늘에 미안함을 변명처럼 담아 용서를 구하니

더딘 나의 봄에도 빨갛고 빨갛게 취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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