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아비보다 훌륭해야 한다. 2

by 잰이

아버지, 저는 이 문장에서 다른 생각의 갈래로도 빠집니다. 훌륭한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말이지요.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을 보면 어느 정도는 더 나은 환경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을 염두에 두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돈이 없고, 좋은 어머니가 없고, 청년시절 인생의 기로에서 선택을 내릴 때 적절히 조언해 주는 이가 없었다고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이 "돈, 돈." 하면서는 안 살아가도록 노력하시고, 좋은 가정환경을 이루고자 노력하시고, 생에 중요한 조언을 주고자 노력하셨지요. 아버지, 그것이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훌륭한 것인가요?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노력에서 미숙함을 엿봅니다. 아버지의 절약이라는 가르침은 적절한 소비나 자본주의에 걸맞은 사고방식이 부재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마냥 화목하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조언은 아버지의 짙은 삶의 경험만큼 다른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워 보일 때가 많죠. 제가 느낀 바를 반면교사 삼아 더 나은 행동을 하는 이가 된다면, 저는 아버지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낫다는 것은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음을 전제로합니다. 아버지와 저는 다른 시대적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분명히 아버지에게 받은 다양한 유산이 있지만, 설령 그것을 토대로 나아가거나 개선해 낸다고 할지라도 아버지와 저의 삶을 판단할 기준은 같을 수가 없을 터입니다.


잠시만, 훌륭함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해봅니다. 훌륭함이란 그 추상적인 속성만큼 다양한 것들을 훌륭함의 후보로 둘 수 있습니다. 용기, 재능, 배려, 사랑, 소통능력 등등 그에 걸맞게 좋은 것들은 꽤나 많은 것을 나열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이것들 가운데 진정 훌륭함을 가리도록 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혹은 이것을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잘못된 방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것을 가리는 행위로는 오히려 훌륭함이 무엇인지 알기 소원해지고, 나아가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훌륭한 사람과도 거리가 있는 삶을 살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훌륭함이 사람들의 주관과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할지라도 말이지요.


어떤 훌륭함에 대해서 말할 때 이미 아버지와 저는 다른 방식의 해석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의 훌륭함의 기준은 서로 달라진 것이지요. 비교할 수가 없게요. 예를 들어, 경제에 관해서 생각을 해볼까요? 아버지는 쓸모없는 소비를 줄이고, 가족의 시간과 같이 화목한 시간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을 높은 가치로 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비는 다른 사람들의 노하우와 새로운 관점의 체험, 문화로의 입문과 같은 소중한 길을 터준다고 믿고, 이를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만큼 앞선 가치들도 저에게 소중합니다만, 서로 다른 사고의 지점이 생긴 것이지요. 그렇다고 제 생각이 더 깊거나 잘난 걸까요? 아니요, 저는 악착같이 아끼고 헌신하는 삶을 기준으로 삼으면 결코 아버지만큼 훌륭해질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이 생겨도 마찬가지이겠죠. 훌륭함은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자식에게 새로운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고민한 바를 똑똑하게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 마음을 다시 제게 적용하면, 저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이란 아버지에게 받은 정신적인 유산을 포함해 세계에서 겪은 바를 토대로 훌륭함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겠습니다.


자식은 아비보다 훌륭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으로부터 이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의 감상은 어떨지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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