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리시는 큰 그림은 아버지는 자식에게 삶의 지혜를 물려주고, 더 잘 살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며 자식은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으로부터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흐름은 우리 부자지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대대손손 이어져 계속해서 우리의 자손들이 더욱 번성하는 것을 바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조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 어린 시절부터 제 행동을 돌아보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게 중요한 능력을 길러주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지금도 종종 제가 처한 상황에 스스로 조언을 하는 상상을 합니다. '지금 이 선택의 갈림길에 내 자식이 서있다면, 나는 아비로서 자식이 어떤 선택과 태도를 가지기를 바랄까?' 이런 상상을 말이죠.
이와 같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어떤 갈림길에 서있는 제 자신은 최소한 그 상황이 낯설거나 미숙한 상태로 마주했기에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미숙하다는 것은 '왜'라는 의문에 적절한 답을 내기 어렵거나, 행동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한 차원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한 태도로 고민하는 것은 최고의 답이 아닐지라도 꽤나 좋은 길로 스스로를 인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한 걸음 뒤, 혹은 한 차원 위에서 바라보듯이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조언으로부터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자각하기도 전에 메타인지 훈련을 시작한 셈이죠. 저는 이런 용어보다, 내 안에 아직 되지 못한 부모로서의 내가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말하셨던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덕분에 저는 가장 좋은 멘토가 항상 제 안에 있는 듯합니다.
부모라고 아들이 하는 모든 경험을 이해하거나 최고의 선택을 조언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마찬가지로 제 안의 목소리도 지금 제 자신을 굽어보아도 마땅한 답하나 내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잘못된 길에 빠질 것 같을 때 경종을 울리고는 합니다. 마치 그것은 남몰래 잘못을 하려 할 때면 부모님이 지켜보고 있어도 그럴 수 있겠냐는 듯이 삐쭉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오지요. 그래서 저는 많은 잘못과 실수에 예민하고, 또 많은 반성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